▲ 이명박 전 대통령.<사진=오마이뉴스 ⓒ권우성>
 작년 이후 ‘적폐’라는 낯선 단어가 너무도 익숙해졌다. 마치 수학의 어려운 공식이름만 말하면 그 내용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듯, 적폐라는 용어도 그 사용빈도가 늘어남에 따라 그 의미를 알고 있는 듯 한 착각을 준다. 적폐(積弊)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상담심리에 그 의미를 보충해줄 적절한 용어가 있다. 게슈탈트 심리치료는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그 무엇을 ‘미해결 과제’(unfinished business)라고 명명한다. 적폐란 미해결된 과제인 것이다. 미해결과제는 과거의 충격적 사건일 수도 있고, 현재 자신의 좌절된 욕구일 수도 있다. 미해결과제가 있으면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과제에 에너지가 집중되다보니, 현재 자신이 집중해야할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옛날 일만 생각하며 현재 일을 처리하지 못하거나, 미래에 대해 꿈을 꾸지 못하는 허망한 삶을 사는 사람과 같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절멸’ 시도
 
 사람을 불건강하게 하는 미해결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습관과 두려움이다. 주장을 하고 싶은 데 타인의 비난이 두려워서 못하고 있거나,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알려주고 싶은데 상대가 받아주지 않을까봐 두려워할 수 있다. 미해결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두려움을 이기는데서 시작한다. 과거를 과거로 묻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마치 머리를 숙이고 자신이 숨었다고 착각하는 꿩과 같다.

 국정원의 민주주의 파괴라 볼 수 있는 정치개입 문제를 밝히고, 그에 따른 수사가 진행 중이다. 그 조사의 끝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이러한 ‘적폐청산’작업에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갈등보다는 안정을 희망하는 장·노년층의 심정과 결합하여 적폐청산을 반대하는 여론이 이전보다 힘을 얻는 듯하다. 그런데 과거는 묻고 미래로 나가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한 개인과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묵혀둔 분노, 서운함이 분출하면 그 파괴력이 몇 배가 되듯 사회적 분노 또한 통제할 수 없는 폭발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묻어둔다는 것은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더 키우는 것일 뿐이다.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첫 국정감사를 보면서 적폐청산이 예상보다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을 것이다. 정책에 대한 논의보다는 정쟁에 몰입되어 있는 모습, 특히 인권침해, 정치보복을 운운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옹호하려는 태도는 시절을 과거 일 년 전으로 되돌리는 느낌까지 주었다. 본인이 태극기집회의 성격에 대해서 논했던 칼럼에서 김진태 의원을 위시한 친박의원들이 박근혜 처벌에 반대하는 주최세력임을 언급하였다. 그들은 단순히 누구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기획하고, 지시하고, 행동하는 조직적이며 적극적인 세력인 것이다.

 국민들은 정당한 법적 절차에 저항하는 자유한국당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그들의 저항이 일부 친박의원에 한정되고, 자유한국당 전체는 나름대로 상식적인 정당이라는 관점이다. 사실 그렇지 않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비상식적이며, 몰염치한 형태는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나름 정당정치에서 적폐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적폐라는 점은 자유한국당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알 수 있다. 자유한국당은 수많은 역사적 부침을 겪으면서 다양한 세력과 통합, 분리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진보적인 정치인과 정당들이 영입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 근간은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만들어졌던 민주정의당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상호경쟁 관계에 있는 대상끼리 공격성을 발휘하는 것은 제한된다. 예를 들어 늑대들끼리 싸움을 하다 한 늑대가 패배하면, 승리한 늑대에게 자신의 목을 들이댄다. 이때 승리한 늑대는 패배한 늑대를 물지 않고 놓아준다. 이러한 다툼은 비일비재하며, 일상적이다. 승리한 늑대는 늑대무리 전체를 위해 자신의 분노를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집단이타성인 것이다. 인간에게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다. 바로 전쟁포로와 연관된 ‘제네바 협약’이다. 비록 전쟁포로라 하더라도 사살, 고문하지 않고 피복과 음식 등 생존과 관련된 기본조건은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쟁의 처참함을 경험하면서 상호피해를 줄이기 위해 고심의 결과이다. 과거 전쟁경험에서 얻은 지혜나 동물마저도 지닌 지혜에 부족한 집단이 있다면 정치인이다.
 
승리한 늑대는 패한 늑대를 죽이지 않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이루어진 국정원 정치개입, 블랙리스트를 이용한 탄압, 언론장악, 시민사회단체 조정, 선거조작 등은 자신과 정치적 관점이 다른 정치세력을 하나도 남기지 않으려는 절멸시도이다. 상대의 생존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이기성의 최극단에 해당한다. 나를 반대하는 상대가 없으면 세상이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는 미숙한 유아기적 소망이다. 그러한 소망은 독재자들의 공통점이다.

 적폐 청산은 단순히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에게만 한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과거 독재시절부터 국민을 적으로 보고, 상대 정치인을 살상의 대상으로 보는 보수정치세력까지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승리한 늑대는 동료 늑대를 결코 물지 않는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는 독재에 가깝다. 그런 정치는 미래를 위해 멈춰야 한다.
정의석 <인문지행>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