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질병모델의 위험

최근 세간의 관심을 받는 시사 프로그램 중 하나는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이다. 11월4일 방송은 고 유병언 회장의 장남 유대균과 인터뷰, 박근혜 전 대통령 5촌 살인사건,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에 대해 다루었다. 이중 상담자로서 관심을 가졌던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 이상에 대한 토론이었다.

최명기 정신건강의학과(이하 정신과) 원장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최명기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1) 자기애적 성격 장애 2)반사회적 인격장애 3)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으로 진단하였다.

반면 정세현 전 장관은 트럼프가 정상이며, 전략적으로 행동한 것을 우리가 비정상인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두 가지 주장 다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후자가 더 정확한 평가로 본다.

정신과 의사들의 유명인에 대한 진단은 오래된 행태이다. 과거 부시 대통령에 대해서도 ADHD라는 주장이 있었다. 국내 의사들 혹은 임상가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 자기애적 성격장애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주장은 타당한 것이며,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우선 그러한 진단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

▲“이상한 사람”이 정신병자는 아냐

그 이유로는 첫째, 사람들을 정상과 비정상 등 지나치게 이원론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러프한 기준을 적용하게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정신질환을 갖게 될 것인가! 상당수의 사람들이 정신질환에 해당할 것이다.

실제 그렇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한때 서울초등학생 중 50%가 ADHD라는 조사결과도 있었다.

둘째, 정신과적 진단은 명확한 범주가 아니다. 진단은 결국 정신질병임을 판정하기 위한 것인데, 그 기준이 칼로 무자르듯 명확한 것은 아니다.

통계적 극단치, 사회적 기준에서 이탈, 주관적 고통과 같은 다소 모호한 준거들을 기초로 판단하며, 각 진단별로 세부적으로 정한 항목들 중 몇 가지에 해당하는지, 어느 기간 동안 지속되는지 등을 고려한다.

어떤 경향성이 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질병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트럼프와 같이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렇다.

트럼프가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지도자와 다른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천박하고, 직설적이고, 적대적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정신질병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또는 이상한 놈이라는 표현이 곧 정신질환을 의미할까? 그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왜 그러한 주장들을 계속할까?

이러한 주장의 문제는 첫째,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를 심화시킨다. 정신질병을 폄하하려는 부정적이며 문화적 고정관념을 확산시킨다는 점에도 좋지 못하다. 다수의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렴을 강화시킬 수 있다. 재활 및 회복 가능한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고정된 환자로 보려는 관점을 포함하고 있다.

둘째, 사회적 문제에 적절하지 못한 대안(질병모델)을 제시하게 된다.

세상에서 비정상성을 가늠하는 기준은 상당히 다양하다. 다소 기준이 높은 도덕적 기준도 있고, 상식과 관행에 근거한 관습적 기준도 있다. 어떻게 보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러한 도덕적, 사회적 기준을 벗어난 사람들이 사회적 해악을 더 많이 끼칠 가능성이 많다.

그들은 매우 이성적이며, 지적으로 우월하고, 자신의 신념이 뚜렷하고, 과제에 대해 열정이 강한 사람일 수 있다. 이처럼 정상성의 범주에 해당하지만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을 질병을 가진 사람으로 보려하는 것은 적절한 대안을 발견하지 못하게 한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외로운 늑대’에 의한 자생적 테러, 다양한 혐오범죄 등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벌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는 세계에 비극적 행동을 할 수 있을지라도 그가 정신질환자여서는 결코 아니다.

▲정신질환 폄하 고정관념 확산

셋째, 정신질환에 대한 역치를 낮출 수 있다.(자신을 정신질환자로 생각하기) 정신과 의사들이 유명인을 면담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섣부른 진단명을 언급하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이익이 될까?

그들이 그렇게 진단한다고 트럼프가 그들의 자발적 환자가 될 리도 없고, 대통령에서 물러나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한 가지 명시적 이익은 그러한 진단을 하는 자가 유명해지는 것이다. 남을 팔아 자신이 유명해지는 식이다. 이 정도의 이익은 애교이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의사와 같은 특정 집단에 상당히 오래 이익을 제공할 수 있다. 즉, “세상의 모든 이상을 정신질환으로 명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같다.

넷째, 질병모델은 의사, 제약회사와 같은 전문가 집단에 대한 의존성을 심화시킨다. 사람들이 “트럼프는 정신이상이야”라는 말을 하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그 기준을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적용할 것이다.

그리고 유사한 행동이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너도 자기애적 성격장애야’라든가, ‘너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냐’와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될 것이다. 그 장면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지 아는가! 본인은 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이 서로를 ‘ADHD 정신병자’라고 놀리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이상행동에 대한 문화적, 심리적, 정치경제적 측면 등을 고려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의 특정 행동이 질병이 되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병원으로 발길을 돌려야 하며, 그러한 결정을 할 때 이미 마음에서 스스로를 환자로 정의하게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 이후 수많은 정신분석가들과 상담가들이 자신에 의한 자기이해, 변화, 창조를 강조 했었는데, 현대에 들어서 자신의 문제를 질병으로 인식하게 하는 잘못된 미디어로 인해 사람들이 자신의 심리적 건강에 대해 주체성을 잃어가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의석 <인문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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