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후 성장(post traumatic growth)

 35살, 공부하느라 아직 미혼인 후배 김은 작년 건강검진에서 암세포를 발견했다. 그녀는 바로 수술을 하느라 한창 진행 중이던 논문과 마지막 학기를 마치지 못했고, 하던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한 채 그만둬야 했다. 수술 후 고통스러운 항암치료가 이어졌고, 면역력이 떨어져 문밖 출입을 하지 못하는 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홀로’ 힘든 시간을 잘 견딘 그녀는 요즘 다시 머리가 자라나 처음으로 미용실도 다녀왔고 일주일에 한번이긴 해도 다시 일을 시작해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녀는 아프고 난 후 스스로 ‘리본(reborn)’을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일에 쫓기지 않을 것, 하고 싶은 일에 더 시간을 할애 할 것,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며 자신에게 온 암이라는 불행이 준 선물 자랑(?)을 했다.
 
▲왜 나에게만 닥친 고난인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이 어떻게 선물이 될 수 있을까? 고난과 역경, 불운은 누구나 피하고 싶기 마련이고, 나만은 아니고 싶다. 더욱이 죽을 수도 있었던 경험에서.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후배는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서른 몇 해를 그냥 ‘열심히’ 살아온 것 밖에 없는 것 같았는데.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했다고 쳐도 여전히 암은 치명적인 죽음의 이유였으니 ‘왜 나에게’라는 물음을 수없이 했다고 한다. 지나간 날을 돌이켜보며 지나치게 완벽함을 추구하는 자신의 성격, 혹은 젊다고 등한시 했던 운동 부족, 집을 떠나 타지생활을 하면서 먹는 것에 소홀해서 몸에 무리가 간 것은 아니었을까 하며 ‘조금만 더 나를 돌볼 것’을 하며 후회했단다. 얼마 동안을 과거에 매달려 후회하고 후회했지만 현실은 수술과 항암의 고통을 견디는 것으로도 벅찼다고 한다. 고통이 깊고 날카로울수록 그녀는 이 시간이 지나면 앞으로는 옛날처럼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번 한번만 잘 지나가면 ‘잘 살거다’라는 다짐을 하며 미래를 꿈꿨단다.

 우리 주변에 이렇듯 심리적 고통이나 마음의 상처를 입고도 성장(혹은 성숙)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를 설명하는 심리학적 용어가 외상 후 성장(Post Traumatic Growth)이다. 외상 후 성장은 외상사건을 경험하고 이를 대처한 후 결과로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긍정적 심리변화이다. 이러한 긍정적 심리적 변화는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삶을 더 감사하게 여기게 되는 것, 인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깨닫게 되는 것, 개인적 힘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는 것, 더 만족스러운 대인관계를 경험하는 것, 자기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 대한 믿음 등이 있다. 예를 들면 암 투병은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새로이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에 살았다는 경험은 삶을 더 감사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위한 행동을 하는 동기가 된다고 한다.

▲고통 극복후 더욱 성장하기

 그런데 우리가 고통을 겪은 후, 원래 상태로 돌아올 뿐만 아니라 성장(혹은 성숙)하는 것은 어째서 일까. 어떤 사람들은 트라우마로 무너져 버리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더 발전하는 것일까.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 심한 병의 선고와 같이 심리적으로 엄청난 사건은 우리의 이해능력을 마비시키고, 안전에 대한 믿음을 깨버리며, 자신의 대처 능력과 세상에 대한 믿음을 흔든다. 게다가 슬픔, 불안, 분노 등과 같은 강렬한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되어 고통을 가중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계속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를 후회하는데 머물지 않고, 이러한 경험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추론한다. 힘든 일이 없었더라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을 발전시킨다. 그리하여 삶의 우선순위를 점검하고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심각한 병은 여유 없는 일과와 운동부족을 깨닫게 했고 부족해도 이만하면 충분한 자신을 인정하게 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는 후배.

 다시 4월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이제 그만 ‘세월호’는 잊어야 한다고 여기는가. 아니면? 국가에 대한 믿음이 새롭게 자리 잡고 있는가. 세상은 안전한가. 우리 삶에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가. 일과 가정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가. ‘다음에’라고 미루는 일들이 없는가. 그 해 4월 이후 우리는 쑥쑥 성장하고 있는지 묻는다.
조현미 <심리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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