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를 사전적 의미는 계약서상에서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 용어였던 ‘갑(甲)’과 ‘을(乙)’에서 비롯되었다. 애초 갑을관계는 주종(主從)이나 우열(優劣), 높낮이를 구분하는 개념이 아니라 수평적 나열을 의미한 것이었지만 한국에선 상하관계나 주종관계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이 갑은 군림하고 을은 비위를 맞추는 ‘갑을’ 문화가 된 것이다.

 갑을문화는 급속하게 자본주의화가 진행된 한국 사회에서 봉건적 가치관과 서구 계약 문화가 혼재하면서 생겨난 부작용의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는 시각이 있다. 결과적으로 현재 우리 사회에선 심각한 병폐이자 적폐로 여겨지고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직장인이 대부분인 ‘을’은 ‘갑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사람이 무려 70퍼센트를 넘는다. 갑의 횡포가 공분의 대상이 된 배경이 이와 무관치 않다.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

 2013년에도 대기업 상무가 기내에서 여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리고, 제빵 회사 회장이 호텔 주차 직원의 얼굴을 지갑으로 때리고, 유제품 회사 영업 사원이 대리점 주인을 협박하고 제품을 강매한 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갑을관계가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잘못된 문화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계속되어 최근에 대한항공에 이어 롯데그룹까지 소위 ‘갑질’에 대한 고발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확산되고 있는 ‘나도 말한다’의 #미투운동 역시 성폭력 피해자인 ‘을’들이 가해자인 ‘갑’의 폭력에 더 이상 참지 않고 침묵하지 않겠다는 행동이다. 성폭력은 주로 위력에 의한, 힘의 차이를 이용해 상대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갑이 가지는 위력은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상대의 심리를 교묘히 조작하는 ‘가스라이팅’ 수법을 쓰기도 한다. 가스라이팅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당하는 폭력이다 보니 자신이 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인지하기도 어렵고 피해자에 대한 주변의 시선 또한 편견이 있어 곱지 못하다.

 ‘을’들의 반격의 공통점은 동등한 인격체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각지에서 용기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당한 피해사실을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직 내 갑질 문화, 위계적인 문화를 끝장내고자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6년 겨울부터 든 백만 개의 촛불은 오직 국정농단 대통령 한 명을 탄핵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가 든 손 피켓에는 후퇴해버린 민주주의의 부활에 대한 염원을 담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에서부터 민주주의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 각자의 노력들이 필요함을 외쳐왔다.

잘못된 문화와 관행, 광주부터 깨자

 지금의 ‘을’들의 반격은 우발적인 한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백만개의 촛불을 든 ‘을’들이 내 주변에서부터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다. 두 사례로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약자에 대한 시선과 대우가 어떠한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다행인 것은 을들의 반격에 시민들이 모이고 지지와 용기를 보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참여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 뿐만 아니라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이기도 하다. 또한 누군가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기 위한 여정은 갑질, 젠더와 같은 사회·문화적으로 기득권층이 만들어 낸 질서들을 깨는 것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부패한 권력과 대항해 희생을 가장 많이 치렀던 도시가 광주다. 그 노력과 희생이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광주에서부터 잘못된 문화와 관행을 바꾸는 민주주의 실천이 많았으면 좋겠다. 요즘 광주의 날씨만큼이나 분지 지형에서 느끼는 꽉 막힌 답답함을 느낀 것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희정<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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