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경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내용은 중국에 사는 친구의 지인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투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다고 하니 내가 그 사람과 SNS로 이야기를 나눠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조금은 부담이 되었지만 #미투 운동은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분야라 거절하지 않았고 그렇게 친구의 지인과 연결이 되었다.

 친구의 지인은 중국 상하이에 살고 있는 교민으로, 신문사 편집국장으로 있는 여성이었다. “상하이에 올해 5월에 한인여성네트 ‘공감’이라는 여성단체가 출발했어요”로 대화는 시작했다.

▲젠더 폭력 사각지대 ‘해외교민’

 올해 초 상하이 한인 사회에서 작은 변화가 생겼다. 교민들은 일 때문에 한국을 떠나 왔지만 한국에서 일어나는 뉴스에 관심이 많단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은 상하이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면 대부분 한국의 대학으로 진학하기 때문에 변화하고 있는 한국의 성문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보편화 되어버린 성폭력 문화에 대한 위기감과 한국사회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미투 분위기로 상하이에서도 여성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해외라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여성들이 많구요. 한국과 오래 떨어져 지내다 보니 평등의식은 물론 직장 내 성폭력, 청소년 성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취약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그들은 한국의 전문강사가 자주 와서 대상별 성인지 교육과 지원 방안에 대해 이야기 해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우리는 한국으로 이주한 노동자, 결혼이주여성의 인권문제와 성폭력·가정폭력문제에 대한 지원과 대응은 하고 있었지만 해외 교민은 나조차도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대상이었다. 상하이 총영사관의 교민 담당 영사가 있겠지만 젠더에 기반한 폭력 지원은 가능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바쁜 일정 속에서도 지난 주말 중국 상하이행 비행기를 탔다. 가기 전 ‘공감’과 여러 차례 의견을 주고받은 다음에 한국학교 교사, 공감 회원들, 한국학교 12학년(고3) 학생들, 총영사관 직원을 주요 대상으로 네 차례의 성인지 교육을 구성하였다. #미투에 대한 관심에 비해 교육의 기회가 적었던 탓인지 반응은 뜨거웠고 매 강의에는 유학 중인 대학생들까지 참여해 질문을 이어갔다.

▲“그곳에도 세상 바꾸는 여성들 있다”

 영사관에서도 신고에서부터 상담, 지원 체계가 전무한 상태에서 교민 사이에 일어난 젠더 폭력이나 현지 기업에 다니는 한국인이 성희롱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도 강간과 같은 형사법 처벌이 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응하기 힘들다고 했다. 공적 시스템 지원이 힘들다는 말이 반복될수록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공감’의 서른 남짓한 교민 여성들의 몫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고 걱정도 되었다. 아주 우연한 기회로 닿은 인연은 내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주었고 미처 알지 못한 젠더 폭력의 사각지대를 알게 되었다. 벅찼던 것은 그곳에서도 여성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투는 성평등 추진체계를 바꾸고 성인지 예산을 늘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스쿨미투는 계속되고 있다. 미투는 지금 우리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음이 틀림없다. 여전히 가해자의 기득권과 권력은 건재하지만 미투는 그곳으로 침투해 성폭력 문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문제점을 드러내 조금씩 균열을 내고 있다. 공세가 만만치 않지만 해외에서도 이 정도면 더 많이 더 깊숙이 연결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제까지 바꾸지 못했던 ‘그’것을 #미투가 바꿀 것 같다. 바꿀 것이다.
백희정<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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