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에서 윤창호까지

▲ 12일 오후 5·18민주광장에서 진행된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광주추모행동의 날.
 가끔 올해가 몇 년인지 잊어버린다. 지나온 몇 년의 세월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은 예사요, 어떨 때는 어제의 일마저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러한 망각의 위세를 이겨내고 있는 하나의 기억이 있다.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다. 올해 4월이면 벌써 5주년이 된다.

 당시에는 이처럼 고통스러운 사고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듯, 사고의 원인과 함께 이 참사의 의미가 무엇일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심해보았다. 오랜 고민 속에서도 사망자, 유족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고통의 의미가 무엇일지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전 국민에게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것, 국가의 의무와 가치가 무엇인지 무서운 질문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무능력하고 시대착오적이고 온갖 비리로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던 보수정권을 징벌했다는 것 정도일까?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들 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최근의 국민들의 반응들을 보면 세월호 이후에 달라진 사람들의 심성을 조금이나마 인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크게 ‘안전에 대한 민감함’과 ‘대안에 대한 적극적 요청’이라 할 수 있다.
 
▲무관심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최근에 태안 서부발전소에서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 씨가 근무 중 사고로 사망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근무 조건의 열악함, 안전의 소홀함, 사고의 끔찍함 등을 알게 되고, 그에 대해 크게 분노하였다. 부산에서는 BMW를 음주상태에서 몰던 청년이 길을 가던 두 명의 청년을 치어 사망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망한 청년 중 한 명인 윤창호 씨의 지인들이 국민청원을 했고, 정치권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일명 ‘윤창호법’이라는 음주운전에 의한 교통사고를 엄하게 처벌하는 법령(특정범죄가중처벌에 대한 법률)을 통과, 시행하게 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언제부터 산업재해와 음주운전 사망사고에 이처럼 민감했던가? 우리는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이와 유사한 사망사고에 도덕적 민감성을 가졌던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도덕적 민감성이 오늘처럼 민감해진 것은 오래되지 않는다. 그건 세월호 이후에 점진적으로 발달한 것이다.(사실은 아직도 발달과정에 있다.)

 예를 들어 서부발전소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만 하더라도 2008~2017년 사이에 총 58건의 사고가 발생했으며 모두 7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하였다. 서부발전소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한 기사는 2016년 2월 노동자 2명이 추락사 했고, 2017년 11월 노동자 1명이 보일러 사고로 사망하였다. 도로교통공단이 작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8~2017년 사이에 음주운전에 따른 사망자는 무려 7018명이었으면, 17년에만 439명이 사망하였다. 왜 우리는 이전에 사고에 대해서는 “끔찍하네, 그런데 그럴 수 있지!”라고 쉽게 넘겼던 것일까? 2003년 197명이 사망한 대구지하철 사고 이후에는 왜 안전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지 못했던 것일까?

 우리는 삶이라고 하는 것은 의례 사고도 나고, 죽기도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살기 위해 어떤 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무관심,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결여는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무관심은 단순히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의 가치체계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 인간의 생존이나 행복보다 발전, 성공, 효율성, 돈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이러한 가치의 절대성에 의문을 크게 표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처벌 강화보다 중요한 공감, 행동
 
 세월호 이후 우리 마음에서 가치의 중심축이 변했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심성에서 보자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부를 만하다. 성공·성취보다 인간 자체의 가치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이젠 내가 모르는 타인의 고통이 결국 나의 고통이 될 수 있고, 우리의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공감능력이 확장된 것이다. 일종의 공동체감의 발전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윤창호법’이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관심이 이후의 사회적 체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보다 처벌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분노를 표현하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한국에서 음주운전 단속 및 처벌과 관련된 법률은 1915년 자동차 취체규칙에서부터 시작된다. 음주운동에 대한 엄격함이 국민들의 만족할 정도까지 되는데 무려 100년이 걸린 것이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현재 한국의 법보다 엄격하다. 스웨덴을 포함한 스칸디나비아국가는 음주운전자의 경우 다시 면허를 신청할 때 알코올이나 약물에 대한 의존성이 없다는 진단서를 제출해야만 하며, 이후 3개월의 관찰, 조건부 면허 중 최소 의사와 3회 면담 등을 명령하고 있다.

 분노 표출은 우리의 마음을 편히 해주는 기제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우리의 삶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누군가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 누군가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대안을 만들어가는 책임 있는 행동이 필수적이다.
정의석<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주)모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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