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다. 그는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범 김모씨에게 4억 5천만원의 거액을 건네고 자녀들을 부정한 방식으로 채용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보이스피싱범이 언급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말에 호흡이 정지되어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증언했다. 결국 윤장현 전 시장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나는 이 사건을 접하고 1950년대를 풍미한 ‘가짜 이강석 사건’을 떠올렸다. 이강석은 1950년대 권력의 핵심이었던 이기붕 전 국회의장의 아들이다. 이기붕은 이승만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으로 서울시장, 국방부장관, 국회의장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그는 1957년 3월 26일, 이승만의 83번째 생일을 맞아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인 이강석을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시킨 것이다. 자식이 없었던 이승만은 오랜 소원이었던 대를 잇는 일을 성취하게 되어 크게 기뻐했다. 이는 세사람 모두에게 득이 되었다. 이승만은 대를 잇게 되었고 이기붕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으며 이강석은 국가의 1인자를 양아버지로, 2인자를 친아버지로 두어 막강한 위세를 행사할 수 있었다. 그는 헌병대원의 뺨을 때리는 등 각종 구설에 올랐다.
 
▲권력현상이 발현할 때 경계해야 할 것

 이강석은 대통령의 양자가 된 직후 대통령의 권력을 통해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편입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서울대생들이 즉각 동맹휴학에 돌입하며 강력하게 반발하자 결국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4·19 혁명이 일어나기 3년 전, 대학생들은 이미 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로 뛰쳐나갈 준비가 되어있던 셈이다.

 한편 1957년 8월 30일, 자신을 이강석이라고 주장하는 청년 한명이 경주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아버지의 밀명을 받고 경주에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경주경찰서장은 그 말을 듣는 순간 호흡의 정지되어 판단력이 흐려졌다. 대통령의 아들이 내려왔다는 소식에 경찰서장은 즉시 달려나가 각하의 아들을 극진히 영접했다. 자칭 이강석은 특급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경찰서장은 자신의 차에 각하의 아들을 모시고 불국사 관광을 시켜주었다. 관광가이드로 변신하여 경주를 소개시켜준 것이다. 사실 자신을 이강석이라고 주장한 청년은 이강석이 아닌 대구의 청년 강성병이었다. 강성병은 고등학교 졸업 후 이강석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자 자신감이 붙어 이 같은 행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경주경찰서장은 영천으로 이동하겠다는 강성병의 말을 듣고 영천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각하의 아드님이 오셨음을 알렸다. 강성병은 자신감이 붙어 이곳저곳을 시찰하며 돈을 받고 다녔다. 지역마다 유지들이 거금을 모아주어 총 47만환에 이르는 돈을 얻었다. 그는 멈추지 않는 페이스피싱을 통해 자신의 본래 고향인 대구에 소재한 경북도청까지 이동하였다. 그러나 이근직 경북도지사는 이강석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고 이강석의 동창인 자신의 아들을 통해 이강석이 가짜임을 재차 확인했다. 강성병은 결국 체포되었고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재판은 큰 화제가 되었고 강성병은 재판장에서 “자유당의 부패함을 시험한 것”이라는 당돌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유서깊은 ‘아첨문화’ 자화상

 당시 민중들은 ‘가짜 이강석 사건’을 통해 권력을 가진 이들의 비루함에 주목했다. 이렇듯 이승만 정권은 뿌리부터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1959년 7월 31일, 이승만은 흔들리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유력한 정적인 진보당 조봉암을 사법살인했다. 이어 1960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하여 이기붕 부통령 후보를 당선시키고자 하였고 결국 시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 이기붕은 강원도의 한 군부대로 피신했고 당시 육군 소위였던 이강석은 수면제를 먹고 깊은 잠에 빠진 가족들을 살해하고 자살했다. 이강석을 사칭했던 강성병 역시 출소한 후 음독자살을 통해 삶을 마감했다.

 곱씹어 봐도 씁쓸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강력한 권력은 실제로 부여된 권한을 넘어 그 이름만으로도 위력을 행사하는 일이 가능하다. ‘윤장현 사건‘과 ‘가짜 이강석 사건’은 권력자와 관련된 이의 부탁이라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사라져버리는 유서 깊은 아첨문화의 자화상이었다. 결국 ‘이강석’과 ‘권양숙’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된 두 대통령의 권력은 그들의 이름이 행사된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큰 불행을 안겨주었다. 시민시장을 내세웠던 윤장현 전 광주시장의 씁쓸한 말로에서 권력현상이 발현될 때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김동규 <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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