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 총여학생회가 사라지고 있다. 1980~1990년대 학내 소수자인 여학생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만들어진 의결권을 가진 기구는 한 때 30여개가 넘는 대학에서 만들어졌으나 2019년 들어서는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연세대에서는 총여를 재개편해야 한다는 투표가 이뤄져 가결됐고, 성균관대에서는 투표를 거쳐 총여가 폐지됐다. 전남대 역시 2014년 이후로 총여기구가 세워지지 못했다. 총여가 ‘더 이상 필요없는 기구’로 자리잡기까지 대학 내에서는 어떤 논쟁이 오갔을까.

이미 성 평등한 대학이 되었다는 이유

실제 대학 내 여성권이 높아졌다는 증거들이 많다. 대학 내 성비율을 따져볼 때, 여성은 더 이상 수적으로 소수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주위에 알고지낸 여성이 대학 임원직까지 겸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게 되는 상황에서, 대학 내 성차별이 종결됐다 선언할만하다 (그럼에도, 대학 임원직 비율은 확실히 여성이 낮다). 그러나 ‘주변에 여성들이 많고,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것 같다’와 같은 보편화된 시각은 현실에 암막을 친다.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성폭력 기사들은 여성이 처한 보통의 일상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사건만을 부각하여 보도하나, 성폭력은 이미 한국사회 여성들에게 ‘보통의 경험’이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동기 남학생들에 대한 실망감이 가장 컸다. 겉으로 봤을 땐 이렇게 말할거라 상상도 못할 만큼 저급한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여자라는 존재 자체가 잘못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경향신문, 서울대 단톡방 성폭력 피해자 인터뷰 ‘소름끼쳤다’ 中)

대학은 사회와 분리된 순수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몰카, 성희롱 등의 사건들은 대학 내 구성원들을 위협한다. 특히 대학사회 내 단톡방 언어성폭력 사건은 대학공동체가 여성을 배제하는 방식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형식적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분리시키며 새로운 내부공동체를 생성하는 식이다.

단톡방 사건들을 시작으로 관련한 사건들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정정의 시도가 있었다. 가해자들은 사과를 하고, 다양한 수위에 징계를 받았다. 사건들이 너무나 일상이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대학 내 구성원들은 주변을 경계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대학은 개별적인 사건해결을 넘어 이미 ‘사건들’을 일상에서 체화하고 불안해하는 공동체를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지, 성폭력이 재생산되고 유포되는 구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하는 논의를 마치지 못했다. 무엇을 성폭력/여성차별적인 상황으로 규정할 것이며, 그런 상황은 왜 발생하는지, 엄중한 처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구조의 변화를 대학사회에서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공백이고 그래서 절실히 필요하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성폭력상담기구만으로 대학사회가 온전히 건강해지는 것을 바랄 수 없다. 여성들이 대학 내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이 무엇인지 논의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대학내부와 대학과 연결된 사회에서 겪는 차별을 직시하게 됐을 때 겪을 수 있는 좌절 대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기구도 필요하다. 막연히 기계적 평등에 기대 총여 폐지를 주장하기보다 대학사회의 학생자치 영역에서 만들어 갈 수 있는 사회변화가 무엇일지하는 적극적인 고민과 논의가 모두에게 요구된다.
소영<페미니즘 동아리 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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