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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석 사회분석]위로고문은 사라져야 한다
정의석
기사 게재일 : 2019-04-15 06:05:02
▲ 대형서점에 따로 마련된 힐링서적 코너.
 필자는 상담자로서 한국의 상담문화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흥미를 끄는 것 중 하나는 일종의 ‘힐링산업’ 혹은 ‘위로산업’이다. 꽤 오랜 기간 자기계발서적이 인기를 끌다가 어느 순간 위로서적이 그 자리를 밀고 들어왔다. 최근에는 대형서점에 따로 힐링서적 혹은 위로서적 코너가 있을 정도이다.

 위로서적이 지향하는 점은 유사하다. “더 이상 열심히 살 필요가 없다”라는 것이다. 왜 그런 종류의 메시지가 이토록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일까? 오랜 기간 학교와 사회에서 경쟁을 하며 성공을 향해 살았는데 더 이상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안 것이다. 주변에서 가능하다고 말해주었고, 자신이 가능하다고 보았던 목표는 이제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반복된 좌절과 통제 불가능한 현실에서 계속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목표를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의 연속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삶에 대한 의지를 내려놓는 것이며, 삶의 기대수준을 최저점으로 낮추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인 것이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손쉬운 해결책
 
 위로가 가지는 긍정적 기능은 분명히 있다. 그것은 지나친 목표로 인해 절망했을 때, 열심히 노력했지만 좌절했을 때 지나친 자책에 빠지지 않고, 자신에게 존재해왔던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보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위로는 일시적인 것이어야 하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기위로는 그 자체가 목표가 되거나, 중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무기력에 대한 정당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 시대 위로는 무기력의 상태를 지속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꿈을 갖지 않아도 되고,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상대방을 걱정해주면서도 상대방이 우울하고 무기력한 상태에 계속해서 머무르도록 장려하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언제까지 위로서적이 전하는 메시지를 들으면서 “나는 실패해도 괜찮아”, “나는 꿈이 없어도 괜찮아”, “나는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아”라면서 자기암시를 걸 것인가? 그것이 일시적인 위로를 넘어서 우리에게 다시금 삶의 만족과 행복을 줄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위로의 가치만을 유일한 것으로 여긴다면 우리의 삶은 무기력한 상태에 남게 될 것이다.

 사실 위로는 자기중심적이다. 위로는 힘든 삶을 만드는 외적 조건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든다. 주변에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에게마저도 관심은 철회된다.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한다는 사고는커녕 정치적 행동으로도 나아가지 못한다. 변화를 위한 아무런 대안도 찾지 못한 채 자신만의 위로에 갇혀 조용히 숨 쉬는 것이다.

 한때 청년들에게 희망고문은 그만하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이제는 청년들에게 위로고문을 그만하라고 말해야 될 때가 아닐까? 위로는 청년들의 무기력을 독려하고, 마치 무기력이 최상의 사랑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개별화된 개인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안에서부터 시들어가는 꽃과 같지 않은가!
 
▲무기력을 장려해선 안돼
 
 한국 사회의 건강함은 빠른 시일 안에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상당히 긴 갈등과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더 이상 위로도 소용없는 시대가 오면 어떻게 할까? 잠시 위로가 주는 마비와 안정이 사라지고 현실을 마주해야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우리는 위로가 갖는 한계를 바라보고, 청년들이 무기력과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과 대안을 가르쳐줘야 한다. 학습된 무기력을 장려하는 위로라면 미래는 없다. 무기력한 청년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이젠 위로최면 이후를 생각해봐야할 때가 되었다.
정의석<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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