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고 싶다. 게으름이라는 습관 때문일까, 능력이라는 자기 한계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더는 할 만 한 것이 없어서, 진득하게 오래 뭔가를 못하는 성격이어서 자꾸 그럴듯한 핑계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급해지면 ‘이제는 그만’이라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시작할 때는 거절하지 못했다가 데드라인이 닥쳐오면 마음속에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생각.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나.

 당신은 언제쯤 당신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싶어지는가. 직장이나 연애와 같은 큰일 뿐 아니라 남들 보기에는 (그럭저럭)잘해 나가던 일을 ‘끝’내고 싶어지는 그런 때 말이다. 재미가 없어져 지겨워질 때인가, 생기와 신선미를 잃어버려서 그저 그런 평범한 경향으로 흘러갈 때인가, 시간이 오래되어 굳어졌다고 느껴질 때인가. 매너리즘에 빠지고 타성에 젖어 있다고 느껴지고 게다가 하던 일이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을 때 막연하게 ‘끝’을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주변의 조언은 ‘초심’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그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에 주의를 두라고 한다. 자신의 재능을 다른 누군가와 나눠주는 것에 가치를 두고 시작했을 수도 있고, 흥미와 호기심에서 시작했을 수도 있으며, 가까운 누군가의 제안으로 함께 무언가를 해 보고 싶어서 일수도 있겠다. 그런데 초심을 생각하라는 것은 그만두면 안 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가치나 흥미, 호기심, 친밀함의 정도가 변할 수 있다. 그러니 처음 시작했던 마음이 변할 수도 있다. 혹자는 ‘환경에 변화’를 주라고 충고 할 수도 있다.

일의 방식이나 횟수, 참여정도에 변화를 줘서 환기를 시키고 에너지를 충전하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참고 참다 바닥을 찍고 나면 미안함 마음을 느끼고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올지도 모르니 시간이 약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 ‘엔딩’을 생각하면 이와 같은 조언이나 충고는 별 소용이 없다. 그만 두면 모든 고민이 불편함이 끝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너리즘이나 타성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시간이 오래 돼서 혹은 인내심이 부족해서 그럴까. 이를 설명하는 학습심리학적 개념이 둔감화다. 사람들은 특정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그에 대한 반응의 강도와 빈도가 감소되는 둔감화(혹은 습관화)를 경험한다.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자주 경험하게 되는 것들에 덜 민감해진다. 마치 백 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섰을 때 가장 긴장되지만 달리기가 시작되고 중간 지점을 통과하게 되면 처음의 긴장이 없어지는 것처럼. 무언가가 계속 지속되다보면 사람들의 주의는 점점 흩어지고 그러다 아예 신경을 끄게 되기도 한다.

만일 당신이 교통량이 많은 대로변 옆으로 이사를 갔다면 첫날은 자동차 소음 때문에 잠자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도 자동차 소음이 계속 신경이 쓰인다면 어떤가? 매일 불면 때문에 피로할 것이고 예민해져 신경질적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은 소음에 익숙해져서 무시할 것이고 적응하게 된다.

즉, 자주 경험하게 되면 익숙해지고 능숙해져서 관심이나 주의가 줄어들게 되고 소홀하게 여기게 된다. 관심이나 주의가 적으면 하고 싶은 마음이나 열의가 줄어들게 되고. 마음이나 열의가 줄어들면 생기를 잃고 만사가 시들해지고. 그만두고 싶어지는 과정을 밟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만일 사슴이 총소리에 익숙해져서 사냥꾼의 총소리를 무시한다면?

 그렇다면 언제쯤 그만둬야 아름다울까. 누군가 당신을 붙잡고 더 하자고 할 때, 박수 칠 때, 환호할 때, 목적한 바를 이뤘을 때 끝내야 할까. 무언가를 시작할 때 ‘지금 이걸 해야 하는 이유’는 확실하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끝을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직장에 입사하면 평생직장일 거라고,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면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다는 동화에 익숙하다. 이제부터 무언가를 한다면(혹은 하고 있다면) 당신이 ‘원하는 엔딩’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떤가. 내가 원하는 결말은 어떤 것인가. 드라마를 보면서 마지막에는 어떻게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듯.

 지금 무언가를 그만두고 싶다면 이 엔딩은 당신이 원했던 엔딩인가? 아니다.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겠다. 원하는 엔딩에서 일을 그만 두게 된다면 적어도 아쉬움이나 미련, 후회는 없겠다.
조현미 <심리상담사>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