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8일 오전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행사장으로 입장 하던 중 시민단체의 항의를 받고 있다.
 한국의 극우보수는 시민들로 하여금 도덕적 성숙을 이끄는 딜레마 상황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5.18기념식 방문도 그러한 딜레마 상황 중 하나다. 자유한국당이 5·18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달과정에서 가지고 있는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다는 수많은 물증과 심증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5·18진상규명특별법 진상조사위원에 지만원을 비롯한 보수인사 추천을 고려했던 점, 진상조사를 충실히 할 수 있는 위원추천을 장기간 미루고 있는 점, 5·18에 대한 망언을 했던 김순례, 김진태, 이종명 의원 등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해 내린 형식적인 징계 등이 있다.

자유한국당의 이념적 지향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의 대표은 5·18기념식 참석은 시민들로 하여금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지 난감함을 주고 있다.

 과거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반응을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5·18에 대해 왜곡하고 가치를 폄하하는 사람들의 참석을 반대하고, 굳이 참석한다면 항의와 시위를 하면 되었다.

그리고 과거에는 그러한 강렬한 저항을 예상하던 인사들은 알아서 눈치껏 참석을 취소하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항의와 시위를 예상한 상황에서 오히려 더 참석하려는 의지를 보인다는 점이 낯설고 의외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황교안을 비롯한 보수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조장함으로서 다음 총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하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무관심과 비폭력을 제안했다. 이성적이고 정치적 유·불리를 고려하면 매우 적절한 전략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대응이 정서적으로 수용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비폭력 저항 첫 발은 증오심 없애기’
 
 지만원·김진태를 비롯한 극우보수 정치인이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발언을 듣고 있자면 분노가 먼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기 어렵다. 어찌 보면 그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반응이 이성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런 전략을 짰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정치적 현명함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리가 느끼는 분노를 조금 더 잘 이해해야만 유시민 이사장이 요구하는 전략을 실천으로 옮길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극우보수 정치인의 주장은 일종의 의견개진이나 정보 제공이 아니다. 그들의 주장은 아주 간단히 범주화하자면 폭력이다. 가정, 학교, 회사 등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 민감성이 어느 정도 정착되어 가고 있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폭력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너무 미숙하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있는데, 가해자에게 호의를 느낀 친구들이 피해자의 피해사실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면, 이는 2차가해로 인정되어 학교폭력으로 처벌받는다. 학교폭력에서 거짓사실을 주장하는 것과 극우보수정치인이 거짓주장을 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그것이 폭력이 되는 이유는 그들의 말이 거짓이며, 그 거짓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의도를 가지고 했으며, 상대방에게 커다란 고통과 위해를 가했다는 점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세월호 유가족을 조롱하기 위해 폭식행사를 했던 사람들의 행위도 심각한 폭력이다. 5·18 왜곡을 시정하지 않은 사람들, 혹은 조장한 사람들의 5·18행사 참여도 동일한 맥락에서 살펴보면 폭력이다. 그들은 약간의 정치적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고, 행사에 참여함으로서 예의를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기만을 이용한 폭력이기에 더욱 죄질이 나쁘다. 광주시민들의 분노는 그들의 행위가 윤리에 어긋나기 때문만이 아니라, 폭력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성숙을 만드는 기회인가“
 
 그런데 시민들을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은 이번 폭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결정하기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표면적으로는 그들의 참석 자체가 폭력적이지 않은데 대응하는 사람들이 폭력적이 될 경우 가해자-피해자 프레임이 작용하여,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폭력은 맥락을 초월하여 강한 도덕적 판단을 불러일으킨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전에서 당한 테러로 인해 여론이 우호적이 되었던 것도 폭력에 대한 감수성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평화,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단체, 집단, 사람들이 폭력을 사용해도 되는가의 문제이다.

과거 90년대 초반 한국이 민주화되는 과정에서는 독재에 맞선 저항폭력의 정당성에 대해 주장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때는 오히려 평화적 입장은 타협적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현재 국민들의 도덕적 감수성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다수의 사람들이 타인이 비록 폭력을 보이더라도 폭력이 아닌 대안적 행동을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 일명 ‘사티아그라하’의 첫 번째 조건은 다음과 같다. “사티아그라하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의 마음속에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이는 사티아그라하가 단순히 정치적 전략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에 대한 신념, 철학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는 보수우익 정치인들이 사회적 폭력을 통해 분열을 조장하고, 피해자가 됨으로서 정치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 사악한 마음에 휘둘려 자신의 폭력성을 눈뜨게 하기보다, 이 세상이 지향해야 하는 지점이 비폭력과 평화임을 생각해보고, 자신의 정치적 가치관을 고양시키는 기회로 보는 것이 나와 공동체 모두를 위해서 바람직하겠다. 극우보수의 폭력이 이 시대 한국인에게 도덕적 성숙을 만드는 기회로 주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정의석 <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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