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미완성이라더니. 내가 졌다. 집으로 가자.”

 ‘5·18 아시아 전도사’로 불렸던 서유진 선생이 돌아가시기 열흘 전쯤인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5월16일 미국에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접하니,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한 이 글을 곱씹어보게 된다. ‘영원한 자유인’을 꿈꿨던 그가 생애 마지막 돌아가고 싶었던 집은 어디였을까?

 페이스북에 이 글을 남길 때 서 선생은 캄보디아에 있었다. 일생 동남아 각국을 돌며 광주항쟁 정신과 가치를 전파하며 ‘5·18전도사’로 살았던 이력이지만, 그는 자신의 주된 활동무대였던 그곳에 남지 않았다.

 육신의 가족들이 있던 미국 볼티모어로 돌아갔고, 운명했다. 목욕하고 정갈하게, 고통없이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 집이었을까?

 선생의 유족과 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광주’로 모셔오고자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지난 22일 망월동 5·18구묘역 안장이 결정됐다. 유족들의 신청을 ‘광주시 5·18 구묘지 안장심의회의’가 만장일치로 가결한 것이다. 이로써 서유진 선생이 돌아갈 집은 광주임이 분명해졌다. 고인의 뜻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죽은 이들의 안식처’라는 숙명
 
 서유진 선생은 80년 민중항쟁 과정에서 많은 피를 흘린 광주에 빚진 자의 심정을 토로하곤 했다. 전북 출생으로 광주와는 인연없는 삶이었고, 1980년 당시 미국에 있었던 상횡이지만 회피하기 어려운 동시대인의 고뇌였으리라. 이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정부 10년을 정점으로 동남아 각국에서 5·18 정신 전파에 헌신했다. 의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행동한 양심이었다. 이 대목에서 돌이켜보면 광주 역시 고인에게 진 빚이 많다. ‘5·18의 세계화’라는 숙제를 오롯히 감당케 했음이 그중 무겁다.

 이제 유골로 돌아오니, 광주는 마땅히 그의 안식처가 돼야 하리라.

 서유진 선생뿐만 아니다. 1980·90년대를 전후해 이 땅의 민주·인권을 위해 투쟁하다 산화한 이들 상당수가 광주를 안식처로 삼았다.

 1980년 5월 국가 폭력에 맞서 싸워서 이 땅에 민주화의 씨앗을 뿌린 이들이 광주에 묻힌 건 당연한 사실. 이후 ‘광주 학살 진상 규명’과 ‘군사정권 타도’ 등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학생, 노동자 등 대다수 민족민주열사가 광주에 묻혔다.

 1980년 직접 취재해 5·18 참상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힌츠페터의 유해 일부도 광주에 안장됐고,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5월의 행적이 새롭게 조명된 고 김사복 씨의 안장 논의도 진행중이다.

 죽은 이들의 안식처, ‘민주 성지’ 광주의 숙명이 됐다. 살아있음이 죄스러웠다는 이들, 죽어서야 광주에 영면할 수 있었다.
 
▲원혼 달래야 산자들도 멈출 수 있어
 
 이제 산 자들에게도 편안한 도시이길 소망한다. 살아있음으로 감당해야 할 죄의식을 덜어야 가능할 테다. 80년 5월 저질러진 무자비한 국가 폭력의 진상을 명명백백 밝히는 게 우선이다. 죽은 자들 원혼을 달랠 수 없다면, 산자들의 투쟁을 어찌 멈출 수 있을 것인가.

 내년이면 5·18 40주년이다.

 숨겨져왔던 진상이 하나둘씩 폭로되고 있다. “전두환이 항쟁 당시 광주에 왔다”는 사실, “사살 명령이 그로부터 나왔다”는 주장, “행불자들이 소각돼 수장됐을 것”이라는 증언까지 나왔다. “헬기사격은 없었다”고 부인한 ‘전두환 회고록’은 재판을 받고 있다.

 이같은 증언을 제도적으로 조사하고, 공적 기록으로 남길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출범이 급하다. “5·18역사왜곡처벌법 제정”, “자유한국당 망언 의원 퇴출”도 필수다.

 다행이 올해 5·18 39주년 주간을 정점으로 진상 규명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어가고 있다. 죽은 자나 산 자들 모두에게 안식처가 될 ‘해원 광주’로 나아갈 기회다.

 다시 한번 ‘5·18전도사’ 서유진 선생의 영면을 기원한다.

 광주지역 인사들도 구성된 ‘서유진을 추모하는 사람들’은 오는 6월1일(토) 오전 10시30분 미국에서 모셔온 서 선생의 유골을 5·18구묘역에 안장하고 추모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채정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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