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도로에서 사법적폐청산연대 주최로 열렸다.<사진=오마이뉴스 ⓒ권우성>
 2019년 9월 28일 저녁에 서울 검찰청 앞에서는 박근혜 탄핵 이후 또 다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이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중요하고 시급한 사회적 과제에 관심을 잃어버리게 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과 연관된 정치이슈를 통해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이 무엇인가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검찰개혁에 대한 주장의 도덕적 근거를 확립하고자 한다.

 자유한국당이 조국 장관 임명에 반대하고 공격하고자 했던 지점은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기준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리라고 판단한 지점이다. 그것은 교육 특히 대학입시와 관련된 공평성에 대한 판단이다. 비록 조국 장관 자신이 아니더라도 가족 중 일부가 입시부정을 행했다면 조국 장관에 대한 임명을 수긍할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의 교육 관련 공평성에 대한 공격은 일면 타당해보였지만 충분한 지지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첫째는 그들의 공격이 조국 장관 자체에 대한 검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는 가족을 인질로 한 겁박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한 청문회 조자 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조국 장관의 기자회견으로 여론이 불리해지자 다급히 했던 청문회에서 조차 그렇다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더불어 청문회 전후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이 제시한 증거들이 검찰에서 전달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조국 자녀의 입시부정에 대한 문제제기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하였다. 둘째는 조국 장관에 대한 공격이 과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연상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과 검찰의 무리한 피의사실 공표와 창피주기 등으로 충분한 법적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자살로 이끌었다는 기억이 있는 국민들에게 언론, 검찰, 자유한국당의 연결성을 인식하게 하고, 과거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아야 된다는 절박함을 만들어냈다. 이는 노무현 정권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정치적 암흑기를 다시 거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스며들어 있던 것이다.

 혹자는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보고 진보에서 요구하는 공정성의 개념을 버리느냐며 진보의 도덕적 이중성에 대해 비난한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경향신문에서 “강남 좌파와 586 엘리트가 오랫동안 감춰온 위선과 욕망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지적하고 있다([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조국의 위기, 여당의 오판, 정치의 몰락, 경향신문 19.9.7). 자세히 살펴보면 조국 장관 자녀의 입학문제는 자유한국당에서 지적하는 것과 같은 도덕적 이중성이 분명 존재한다. 중요한 점은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교육과 관련된 공평성의 개념을 모르거나,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도덕성의 기준은 자유, 배려, 공평성, 권위, 충성 등이 몇 가지로 구분된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도덕성이 상충될 때 더 중요한 도덕적 기준을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포기한다. 현재 조국장관 임명을 찬성하는 시민들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라는 도덕적 기준을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검찰의 수사가 사람들이 기대하는 범위를 상당히 벗어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언론이 보이는 조국 장관에 대한 비판적 기사가 중립적이지 않고, 검찰이 흘렸을 것으로 의심되는 내용을 신속하고,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이러한 선택을 이중적이라고 비판할 근거는 없다. 그들은 한국 정치의 맥락에서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측에서 서울대, 고려대 학생들의 촛불집회가 이기성의 발로라고 비판한다. 정치평론가들과 교수들의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의 집회에 대해 뜨겁게 논쟁하고 있다. 전남대 김상봉 교수는 한겨례 신문의 컬럼에서 “‘스카이캐슬’에 살지 않는 대다수 사람에게 입시 자체가 불평등의 재생산장치가 되어 버린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서울대 촛불은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연막이다.”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공정성이 서울대, 고려대와 같은 사회에서 인정받는 학벌과 기득권을 의심받지 않기 위한 이기적 주장일 뿐이지, 사회적 정의와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김상봉, 씨알의 철학] 서울대생의 촛불, 너릿재 너머의 아이들, 한겨레 2019.9.8.).

 김종엽 한신대 교수는 심포지엄에서 “서울대 또는 고려대 학생들은 자신의 스펙은 정당하지만 조씨의 의학논문 같은 스펙은 이상하다거나 기이하고, 엄청난 특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의 불만 역시 2010학번인 조씨와 대부분 2015∼2019학번인 두 대학 재학생들 간 입시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라며 그들의 분노와 요구가 과거 입시제도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온 것이기에 그들의 분노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세계일보 “서울대·고려대 ‘조국 반대’ 집회, 빈약한 공정 개념에 기반한 것” 2019.9.21.).

 반면에 이동건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는 ‘한겨레 신문’의 컬럼에서 사람들의 서울대 집회에 대한 비난은 “서울대생에 대한 과도한 증오심과 비아냥거림”때문이며, “입시의 공정성을 회복하려는 공공성의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왜냐면] 김상봉 교수의 글에 반(反)함, 한겨레 2019.9.11.).

 이러한 상반된 주장을 보면서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학교에서 입시와 관련된 공정성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학생으로서 그러한 주장 자체가 무엇이 잘못이겠는가? 하지만 그들의 주장이 언론과 자유한국당에서 꿈꾸는 것과 같은 전반적인 사회정의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들이 다른 정당, 정치적 단체의 참여, 연대와 선을 긋는 것만 보더라도 그들은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에 전혀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협소한 것을 비난한 듯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들이 과거 그들의 운동권 선배들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할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는 그들의 대학 내 공정성의 도덕적 기준보다 서초동 앞에서 시민들이 요구하는 검찰개혁의 주장이 현 시국에서 국가와 시민이라는 공동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면 될 뿐이다.
정의석<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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