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기간 동안 온 도시의 거리에 붙은 명절 인사 현수막을 통해 2020 총선 입지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입지자들은 평범한 추석 인사에서부터 ‘반아베’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문구를 통해 자신들을 드러냈다. 필자는 오랜 시간 시민단체와 여성단체 일을 한 직업병(?) 때문인지 내걸린 현수막을 통해 어느 지역구에 누가 나왔고 어떤 이력을 기진 사람인지? 기존 정치인과 다른 경험을 가진 이색 경력의 입지자 출현 여부와 지역 여성들의 도전은 얼마나 많아졌는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현수막에서 인사를 한 대부분은 중년 남성이었다. 이대로라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선출직·지명직에 여성 30%를 할당’하도록 되어있는 당헌당규를 지키기 어렵게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총선에서 여성과 사회적 약자 계층의 진출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가 주요 쟁점이 된 지 30년(1990년대 이후)이 되었는데도 정당들이 여성 정치인 양성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결과라고 보여진다. 관련 자료를 읽다보니 여성들이 현실 대의제 정치의 남성중심성을 지적하며 여성의 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해 적극적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1947년 제헌의회여서부터다. 제헌의회에 입후보한 여성이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한 상황을 두고 당시 정치인 박순천은 ‘홀아비 국회’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1대에서 15대 국회까지 지역구에서 선출된 여성 의원은 기껏해야 1~2명이었다. 2000년 16대 국회에서 5명이 당선되기까지 50년이 걸린 셈이다. 17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선출된 의원을 포함해 10%를 갓 넘겼고 지난 20대는 51명(17%)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여성 의원 수가 늘어난 것은 할당제 도입과 같은 제도 개선과 연관이 있다. 반대로 제도 개선의 노력이 없을 시는 여성 의원 수가 제자리에 머무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해 할당제와 같은 강제적 조처의 확대는 유효했다고 보여진다. 문제는 할당제가 추진되는 동안 남성중심적 정치문화, 정당구조, 선거제도 등에 대한 개혁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성을 둘러싼 조건이 어떻게 불공정한지를 문제 삼아야 했다.

 여성 정치인을 양성하려는 노력과 성과가 없는 상태에서 할당제는 무리한 전략으로 비치게 될 가능성이 있고 이런 전략은 할당제의 정당성을 취약하게 만든다. 할당제의 논리 구도는 여성을 괄호 안에 넣고 여성이 어떻게 기존 정치 제도에 들어갈 수 있게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문제는 이런 논리 구도는 여성이 불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할당제가 추진되는 동안 공정한 경쟁을 위한 정치구조의 개혁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인데 말이다.

 준비없이 코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에서 각 정당의 지역구 여성 후보 의무공천과 관련해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 이번에는 좀 더 확장된 목소리와 논리가 가세 되기를 바란다. ‘할당제가 여성 정치인의 무임 승차’라는 논리에 반대해 ‘여전히 강제적 조처 없이는 지역구 여성 의원이 답보 상태에 머무르게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대변하는 것 외에도 여성의 과소대표, 여성의 차이, 여성의 자격, 여성 할당제의 정당성 등 여성이 쟁점의 대상이 되고 ‘여성’에게 향하던 질문이 남성과 정치문화, 정당의 정치구조를 향해 어떻게 열리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강력한 목소리 말이다.
백희정<광주로 지역공공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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