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광주시가 실시한 코로나19 예방 범시민 일제 방역 모습. 광주시 제공
인간은 자신이 생물임을 잊고 산다. 인간은 자신이 다른 생명에 의존한다는 인식을 전혀 하지 못한 채 ‘행복한 소비’라는 경험 속에서 신처럼 살아왔다. 인간은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동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공생하면서 살아왔지만, 인류는 이 세상에서 함께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들에게 크나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인류의 역사는 사고, 천재지변, 전쟁 못지않게 질병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질병은 한 개인에게 신체적 기능을 손상시키거나, 목숨까지 앗아갔다. 질병은 사회의 시스템을 맡고 있는 개인들을 앗아감으로서 공기처럼 인식하지 못했던 견고한 사회체계들을 붕괴시켰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단순히 질병에 대한 생물학적 예방과 대처라는 과제만을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질병이 가져오는 사회적 피해까지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질병전염의 원인을 파악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는다. 1676년에 겨우 박테리아가 현미경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1300년대 중반 대유행했던 흑사병 이후 300여년이 지난 다음이다. 박테리아보다 더욱 미세한 바이러스는 1898년에야 비로서 그 이름이 명명되었다.(독이라는 의미를 지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들이 질병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 인류의 대처행동은 미신적 수준에 머물렀다.

과거와 현대의 핵심적인 차이는 치료가 아니라 원인에 대한 이해에 있다. 인류는 아직까지도 바이러스에 대한 적절한 치료법을 제한적으로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바이러스는 가볍게 볼 생명체가 아니다. 인간은 원인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다소 불안을 감소시킬 수 있고, 비효과적 대처에 불필요한 노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생물학적, 의학적 지식이 상당히 축적된 현대에도 비합리적인 설명이나 종교적 설명이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상당한 교육을 받은 지도층 인사들이 비현실적 설명을 하는 것은 그들이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지지층을 적절히 통제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과거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라’고 불리는 박테리아가 유럽을 강타했을 때, 유럽인들은 지진에 의해 분출된 독가스가 원인이라거나, 유대인이 독을 퍼트렸다거나, 인류의 죄에 대한 신의 벌이라는 다양한 설명 등을 통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의 대부분은 인간의 면역체계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국가와 각 개인이 하고 있는 대처방법은 바이러스 확산을 저지시키는 것이다. 2002년 12월경에 시작해서 2003년 7월에 종식된 사스나(약 8개월), 2015년 5월에 시작하여 12월에 종식된 메르스 모두 바이러스 확산의 저지로 인해 질병이 종식되었다.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가 대유행의 변곡점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대유행’란 세계의 모든 인간이 다 걸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특별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면역체계가 잘 기능한 사람만이 생존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감염을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칭찬하고 격려해야만 할 일이다.

정치권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올 국가적, 국제적 위협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감염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들의 상호협조가 필요하다. 정부는 감염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고 투명하게 전달하는 것, 국민은 정부와 의료계가 전달한 객관적 정보를 믿고 감염예방수칙을 따르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상호협조의 과정에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개인은 자신의 감염예방행동이 적절하고 효과적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예방행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효능감(efficacy)이라고 한다. 만일 그러한 믿음이 없고 공포에 질린다면 비현실적인 대처행동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회는 정부가 수행하고 있는 감염과 치료행동이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 자신을 감염에서 지켜주고 치료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감염예방활동과 치료활동이 효과성을 보이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견딜 수 있다. 만일 그러한 믿음이 깨진다면 사회적 폭동, 저항, 혼란이 커질 것이다.

현재 보수야당의 행동을 보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대한민국이 혼란에 빠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감염활동이 실패했다고 주장하고, 감염예방활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장관을 경질하라고 요구하고,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하라고 주장하는 등 감염과 치료에 대한 대안은커녕 사회적 분열과 의심만 증폭시키고 있다. 한 정치인으로서 사익과 자신이 속한 정당이 권좌를 차지한다면 자신이 속한 국가에 크나큰 손상을 주더라도 괘념치 않겠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자행하고 있다.

이번 질병감염은 한편으로는 생태계와 질병에 대한 이해와 대처를 어떻게 해갈 것인가에 대한 배움의 과정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가 질병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치인, 어떤 정치집단을 선택해야하는가를 알려주는 시험대이다. 지혜롭고 자애로운 정치집단은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일시적으로 비난을 받더라도 전체 국민을 위한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중국인을 희생양으로 삼지 않으면서, 해외거주민을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감염을 이겨낼 방안을 지켜낼 집단이어야만 한다. 국민보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을 위해 그 어떤 것도 희생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정치판에서 조용히 물러가라고 외쳐야 할 때이다.
정의석 <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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