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도시의 추억 10.8km] <4> 양림동~진월동

▲ 1976년 백운광장의 모습. 철도가 보인다. 사진 출처=빛고을 백년사.









 ▲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인 우월순 선교사 사택.

 











 ▲ 양림산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400년 정도 된 호랑가시나무. 시 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광려선을 타고 광주에 들어왔을 때 처음 만나게 되는 동네가 백운동, 양림동이었다. 주월·진월동은 1970년대 말, 80년대 초가 돼서야 신흥주택이 들어서 도시의 모습을 갖췄다.

 “광주수피아여중·고가 광주를 접하는 첫 풍경이었어. 학교에 심어진 플라타너스도 보이고 그랬는데, 이제는 건물들에 가려 보이지 않지.”

 좋은동네만들기의 최봉익(63)씨의 양림동에 대한 추억이다.

 광주의 근대를 상징했던 기찻길이 없어지고 그곳에 푸른길이 조성되고 있는 것처럼, 광주의 근대는 그때를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기도 하고 건물들을 통해 그때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기찻길 옆 동네들 중에서 오래 된 과거의 모습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곳이 양림동이다.

 











 ▲ 50여 년 된 광주양림교회.

 

과거 품고 사는 숲길과 건물들, 서양길

 양림동 재개발사업으로 1900여 세대 규모의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푸른길과 대남로에서 마주치는 현재의 풍광이다. 하지만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보면 바로 양림동의 과거와 만난다. 양림동사무소에서 기독병원으로 가는 길의 이름은 `서양길’.

 1904년 미국 남장로교 배유지 선교사가 양림동에 들어와 선교부를 설치하고 복음 선교를 시작했다. 또 1908년 수피아여학교와 숭일학교를 세웠고, 현 기독병원인 제중원을 개설함으로써 양림촌은 서양촌으로 불려지기 시작했다.

 서양길을 따라 가다 선교길로 접어들면 양림동산 입구다. 1900년 대 이곳에 정착해 살았던 이들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우월순 선교사 사택, 피터슨 선교사 사택 등이 있다. 우월순 선교사 사택은 1920년대에 증축돼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서양식 건축물이기도 하다.

 











20여 년 돌을 수집하고 있는 박태철씨는 푸른길에 돌을 기증하기도 했다. 사진은 박씨 집 입구 모습.
 ▲20여 년 돌을 수집하고 있는 박태철씨는 푸른길에 돌을 기증하기도 했다. 사진은 박씨 집 입구 모습.

 

화순·나주·고흥에서 올라와 동네 형성

 광주의 초입인 양림동과 방림동은 화순, 나주, 멀리 고흥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사는 빈촌이었다.

 “동구에 비해 촌동네였지. 일용직 노동자들도 많았고.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올라왔던 사람들과 철도의 만남은 숙명이었나봐.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자기도 했지만 철도를 건너서 버스를 타곤 했는데 철둑 건너 밭길로 가는 것이 운치도 있고 멋있다는 생각을 했어. 가난했지만 행복했었다고 해야 하나.”

 서른살에 광주에 왔다는 민판기(57)씨의 회고다.

 푸른길에 광려선의 철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침목 사이의 자갈들을 손으로 세면서 옮기는 이가 있다. 30여 년 동안 이곳 철로변에 살았다는 이 사람은 `도암양반’으로 알려진 인물. 15년 전 둘째 아들을 철길에서 잃은 후 자식이 보고 싶어 철길 주변에서 텃밭을 일구었고, 이제는 푸른길로 바뀐 그곳에서 돌을 세어 옮긴다는 것. 기차와 함께 울고 웃었던 것이 주민들의 삶이었다.

 그때의 빈촌에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는 것. 그러나 계림동, 동명동 등이 그랬던 것처럼 일부 구간만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어 마을의 양과 음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다. “똑같이 재개발을 하든지 해야지. 동네가 험해서(주택이 낡아서) 쓰겄소.” 한 주민의 말이다.

 











 ▲철도가 없어지고 생긴 푸른길은 주민들에게 아늑한 휴식처다.



 주민 관심으로 더 푸르러지는 푸른길

 푸른길은 민관이 함께 도심에 녹지를 조성하는 것으로 전국적으로도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

 푸른길의 대남로 구간과 주월~진월 구간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시민들의 참여다. 푸른길운동본부의 헌수운동을 통해 조성된 기금으로 나무가 심어지고 벤치, 기념정원 등이 만들어졌다.

 시민들의 참여는 나무를 심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주민들은 모임을 꾸려 자발적으로 청소하는 등 푸른길 주변을 가꾸고 있다.

 대남로 구간에서는 백운2동·양림동 등 7개 동 주민 100여 명이 자원봉사단을 조직해 활동하고 있고, 주월~진월 구간에서는 주월1동 주월·장산·덕수·금당 경로당과 광복노인회 회원 30명이 `푸른길공원 실버가꿈이’ 조직을 꾸려 활동하고 있다.

 답사를 하면서 푸른길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주월~진월 구간에 조그마한 섬잣나무가 심어졌다. 누군가 분재에 키우다 너무 많이 커버려 푸른길에 옮겨심은 것으로 보였다. 잘 클 수 있게 지지목도 세워져 있었고 잡초가 생기지 않게 짚까지 깔아져 있었다.

 푸른길에서 호미질을 하는 주민도 있었다. 안영순(59)씨다.

 “코스모스가 한쪽에 몰려 있길래 고루 예쁘게 피었으면 하는 생각에 옮겨 심고 있어요. 이 곳에 산 지 20년 됐는데 푸른길이 생겨서 좋죠.” 

글=조선 기자 sun@gjdream.com  사진=기찻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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