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밀려온다 기로에선 마을들]
<1> 북구 건국동 본촌마을

▲ 소문만 무성한 개발. 북구 본촌마을이 개발과 보전의 기로에 서 있다. 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개발의 첨병’인 아파트가 도시화란 이름으로 거침없이 진격하고 있다.

찍어낸 듯 단단한 콘크리트 더미 앞에 몇 십 년 유려하게 버텨온 기와집들은 내리찍히듯 순식간에 허물어 내린다.

몇 해 전 길 건너 양지마을의 소멸을 지켜본 이들. “다음은 우리 차례인가?”를 되뇌이는 요즘이다.

북구 건국동 본촌마을. 광신대학교 인근으로 한때 120가구 세를 과시하며 살았던 광산 김씨 집성촌이다. 지금은 80여 가구만 남은 이 마을이 올초부터 뒤숭숭하다.

아파트 개발사업, 이른바 ‘작업’이 진행된 것. 대기업 건설사가 지난 1월 주민 90% 이상의 동의를 얻어 주택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본촌마을 1만9000여 평을 대상으로였다. 이때만 해도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주변의 마을들이 몇 년 전부터 아파트 개발로 사라지면서 예견된 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주민들이다.

개발 바람이 불면 그때부터 마을은 폐허가 된다.

“아파트 들어오면 언제 뜯길지 모르잖어. 누가 집 수리를 하겠어. 그냥저냥 살게 돼지.” 열여덟살에 이 마을에 시집왔다는 이복순(84살)씨 말대로 마을엔 빈집과 허물어져가는 건물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하지만 보상가를 놓고 건설사와 주민간 뜻이 맞지 않았다. 대기업 건설사는 ‘없었던’ 일로 하고 철수했다.

한 번 일어난 바람은 쉬 잦아들지 않았다. 또다른 건설사가 본촌마을을 포함, 4만 여평으로 규모를 키워 주택사업을 추진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파트 필요없어.” 이번엔 주민들이 먼저 반기를 들었다. “바로 앞까지 도로 다 뚫려서 살기 좋은디 뭐할라고 아파트 지옥살이를 해.” 버드나무 아래서 땀을 식히고 있던 김 모 어르신은 “마을 사람 대부분은 반대여”라며 강경했다. 궁벽진 시골, 외딴 곳으로 존재했을땐 사는 것이 불편해서 한 번쯤 꿈꿔본 것이 아파트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이미 주변이 아파트 천지가 되고 보니 부대시설들이 넉넉해 사는 데 굳이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

토지소유자의 90%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한 것이 민간업자의 주택개발사업. 현재의 분위기라면 본촌마을은 상당기간 더 운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지난해 이 동네로 이사온 30대의 이모씨는 “젊은 사람들은 개발에 찬성하고 있고, 이들이 주축이 돼 추진위원회를 꾸린 만큼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마을 주민 김모씨도 “땅 많이 가진 사람들은 개발을 보채고 있다”면서 “우리 같이 힘없는 노인들이 버틴다고 막아질 것인가?”라며 체념한 듯했다.

본촌마을 주민들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것은 아파트 뿐만이 아니다.

마을 뒷산이 도로로 깎일 운명인 것. 학이 날갯짓하는 모양이라고도 했고, 솥가마를 닮았다고 해서 ‘가마부촌’이라고 불렸던 본촌마을의 수호신인 뒷산이 북부순환도로(용두동~장등동간 5.4km)부지로 도시계획돼 있는 것이다. 광주시는 현재 이 구간 건설비 국비 지원을 건교부에 타진하고 있다.

조만간 결론이 내려지면 마을보다 뒷산이 먼저 헐리게 될 판이다. 이래저래 본촌마을은 역사속 이름이 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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