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밀려온다 기로에선 마을들]
<2> 봉선동 불로마을

▲ 아파트 숲 사이 고립된 봉선동 불로마을. 옹벽으로 단절된 주민들이 길을 요구하자 구청측은 철제사다리를 만들어주고 손을 털었다.

“논이 있소? 밭이 있소? 이대로는 못 살지. 빨리 아파트나 들어왔으면 좋겠소.”

30일 남구 봉선동 불로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의 하소연. 옥구 장씨 집성촌인 이 마을에서 26대째 살아오고 있다는 장팔옥(79)씨다.

조상 대대로 삶의 터전이었던 논밭이 최근 몇 년 새 아파트로 변하는 현실을 생생히 봐왔던 그다. 포스코·쌍용·한국 등 현재‘부자동네’ 봉선동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건물들의 터가 조상들의 논밭이 있던 자리다.

먹고 살 터전을 상실했으니 원래 농민이었던 주민들은 수족을 잃은 꼴. 남은 집터 역시 아파트로 개발해 주기를 바라는 지경에 이르렀다.

먼저 바람을 잡은 것은 건설사였다.

“올 초 아파트 들어선다고 주민들 서명을 받고 다니더라고.” 다른 이들을 설득할 요량이었는지, 건설사는 마을서 오래 살았던 장씨에게 계약금조로 얼마간의 금액을 건넸다.

하지만 외지서 살고 있는 땅 소유자 중 한 명이 집터를 팔 수 없는 형편이 되면서 아파트 건설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떠나고 싶을까마는, 아파트에 포위된 마을에선 더 이상 먹고 살 도리가 없는 것을 어떡하겠는가.”

장씨는 집터가 팔리면 서울에 사는 자식네 집으로 들어갈 요량을 세워놓은 상황이다.

진입로도 없는 마을에 주민들의 땅을 내놓게 해 길을 만든 장본인이 장씨였다.

“당시엔 길 만드는 데 땅 내놓으라고 했다고 마을주민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네.” 그 길은 마을 진입로에 그치지 않고 제석산 아래에 위치한 절, 대각사로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유서 깊은 길이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뚝 끊겨 버렸다. 대각사와 마을 사이 들어선 아파트가 단절의 주범이다.

길이 끊기면서 마을도 고립된 모양새다. 아파트 터를 닦으면서 조성한 거대한 옹벽에 마을이 갇혀 버린 것. 이즈음 마을 뒤편으로 길을 내달라는 주민들의 민원이 수차례 제기됐고, 구청은 옹벽 위로 철제 사다리를 걸쳐주는 것으로 ‘할 일 다했다’는 듯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한때 20여 가구 이상 여유롭게 살았던 마을은 현재 10여 가구도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원주민은 5가구 정도에 불과한 실정.

“먹고 살 도리가 없다”며 떠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주민들. 아파트만 지으면 성공한다는 봉선동에서 자투리의 땅이라도 찾기에 혈안이 돼 있는 건설사들.

봉선동의 마지막 농촌, 불로마을의 운명을 점치기 어렵지 않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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