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밀려온다 기로에선 마을들]
<4> 염주골
개발붐 타고 쇠락…20가구만 남아
식당에 빼앗긴 정자 옛모습 복원을

▲ 500년 염주골이 사라지고 있다. 주민들은 당산나무라도 지켜주기를 마지막으로 소원하고 있다.

500년 역사의 염주마을. 지금 사라지고 있다.

지켜온 세월은 다가오는 모든 시간 앞에 속수무책. 한때 120가구 번영을 구가했던 마을은 20여 가구 초라한 행색으로 남아 옛 영화만 곱씹는 형편이다.

마을의 밑천을 상실한 탓이다. 끼니와 벌이의 중심이었던 논밭들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염주골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화정주공·염주지구·신동아·한양·광명·대주아파트 등이 솟아오른 터가 마을의 밑자리였다. 그나마 남아 있는 몇 채 안 되는 마을 코앞까지 사우나·노래방·식당 등이 줄지어 진군했다.

사라지는 것은 이제 시간의 문제. 주민들 역시 옛 터를 지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마을 근처 짚봉산에 올라서 바라보면 마을의 모습이 염주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 ‘염주’. 지금은 아무리 눈 씻고 찾아 봐도 지도에도, 주소에도 없는 이름이다.

일대를 둘러보면 아직 흔적은 많이 남아 있다. 염주주공, 염주체육관, 염주동사거리, 염주동 성당 등등. 하지만 500여 년의 전통을 삼키고 현재 이 마을을 대신하고 있는 이름은 화정2동이다.

주민들의 불만도 예서 출발한다.

“지키고자 애쓰는 것은 마을의 고가옥이 아니다. 염주라는 이름을 버릴 수 없음이다.” 토박이 김만수 씨의 안타까움이다.

‘염주’의 징표와도 같은 것이 바로 마을 당산나무다. 500년 염주골과 운명을 같이 해온 나무. 300살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500살이라고도 하는 팽나무다. 마을의 태동과 함께 해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주민들은 당산나무의 운명을 마을의 운명과 동일시하고 있다.

하여 모든 옛 가옥들이 다 헐리더라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이 나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현실에 좌절과 절망이 크다.

이미 팽나무 아래 운치 있었던 정자는 근처에 식당이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사유지라는 제도상의 권리가 마을의 유산을 허물어 버린 것이다.

“식당의 신축자는 새 부지에 정자를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 주민들의 공통된 주장.

김씨는 “화정2동 동장·통장,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건축허가의 조건으로 약속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물주가 현재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다.

“주민들은 옛 모습 그대로의 마을 상징물을 요구하고 있는데, 건축주는 흉내만 내는 식의 볼품없는 정자를 지어주고 말겠다는 심산이어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

서구청은 “당시 조건은 약속사항이었지 강제사항은 아니었다”면서 한 발 빼버린 상황.

변변한 마을회관 하나 없어 고 가옥을 임대해 쓰고 있는 실정인지라, 정자를 잃어버린 주민들의 분노는 클 수밖에 없다.

팽나무도 수난을 당했다. 사유지를 넘본다는 이유로 몇 개의 가지들이 무참히 잘려 나간 것이다. 개발과 보존의 경계에서 팽나무가 당하고 있는 고난이다. 이는 염주마을의 십자가이기도 하다.

남겨진 규모가 워낙 작아 재개발을 위해 덤벼드는 업자도 없는 상황. 염주마을은 도심 한 가운데 시간이 멈춰버린 섬처럼 궁벽하게 웅크리고 있다.

잊혀진 듯, 버려진 듯 염주마을은 그렇게 고사당하고 있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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