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밀려온다 기로에선 마을들]
<5> 광산 운남마을

▲ 광산구 운남동 아파트 단지들에 둘러싸인 단층 기와집들이 `운남마을’의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마저 재개발 바람을 타고 있다.

 광주역에서 하남로를 따라 극락강을 건넌다. 흑석 사거리에 못 미쳐 길 오른편은 신가동, 왼편이 바로 운남동이다. 대규모 택지개발로 주변은 20층이 넘는 아파트들의 `숲’이다.

 극락강역 서북쪽으로 주공아파트 4,5단지를 향해 나 있는 금구길. 이 길을 따라 아직도 기와지붕들과 좁다란 옛 시골 골목들이 남아 있다.

 “울람마을(운남마을)이여. 옛날에는 비아면에서 면소재지 다음으로 제일 큰 동네였제. 많을 때는 130가구도 넘었지.”

 마을 안길에서 만난 주민들은 어젯일처럼 마을의 옛 `영화’를 떠올린다.

 광산문화원에 따르면, 지금 운남동은 원래 운림촌이라 불렸다.

 처음 마을을 이룬 전주 최씨의 성씨와 무관치 않은 이름이다. 한자 `최(崔)’자를 풀면 산 밑에  새가 있는 모양인데, 이를 맵새 또는 뱁새라 한다.

 뱁새는 구름(雲)이 일고 수풀(林)이 있으며, 비가 내리려고 할 때 밖으로 나온단다. 운림(雲林)촌의 이름은 그렇게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그들은 마음대로 행정구역을 정리했다. 이미 동구 지원동에 운림동이 있어, 그보다 남쪽이라는 의미에서 운남이라 바꾼 것.

 하지만 아직도 운남동 주변에는 옛 지명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운남마을 정자의 이름은 `운림정’이고, 지금의 주공 4단지 인근에 있었던 금구동이나 그 옆 방동은 각각 금구초교와 방동초교 등의 학교 이름 속에 남아 있다.

 지금의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이 마을은 북쪽과 동쪽으로 야트막한 산이 둘러싸고 있었고 남쪽으로는 기름진 평야가 펼쳐진 곳이었다. 남쪽으로 흐르는 극락강은 평야를 살지게 하는 젖줄이었다.

 그러나 이 마을 역시 도심 개발의 파도에 어쩔 수 없었다. 주택공사가 대규모 택지개발을 벌였다. 마을을 둘러싸던 야산들이 깎여 나갔다. 봉우리 끝에 수달 머리 모양의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수달봉 자리엔 주공 4단지와 5단지가 들어섰고, 동쪽 야산에는 주공1·2·3단지가 들어섰다.

 잘려나간 야산은 마을 서쪽 주공아파트 6·7·8·9·10단지의 터를 닦는 흙으로 쓰였다.

 마을 남쪽으로도 삼성아파트, 남양아파트 단지가 줄줄이 들어섰다. 극락강과 마을 사이에 놓인 셈이다. 마을 사람들 일부는 아파트 개발과 함께 옛집을 떠나 아파트로 들어갔다.

 이제 남은 마을은 아파트 숲이 빙 둘러선 한복판에 외로운 섬처럼 떠 있다.

 그나마 이 마을도 남은 날이 많지 않아 보인다. 마을을 재개발하기 위한 주민 서명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17살에 이 동네로 시집와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는 김모(80)할머니는, 담도 없이 안방마루가 골목길과 맞닿은 한 칸짜리 슬레이트 집에 살면서도 “인자는 여기서 마지막까지 살다 가야제”하신다.

  이광재 기자 jajuy@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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