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밀려온다 기로에선 마을들]
개발 지금은 주춤 “저지 아닌 잠시 유보된 상태”
<7>용두동 거진·거상·거하마을

▲ 삼형제 중 둘째뻘인 거상마을 뒤편까지 아파트가 밀어 닥쳤다. 마을 앞 너른 논들은 주민들의 밥줄이었지만, 외지인들은 아파트 터로 눈독을 들이고 있다. 

거(巨)를 돌림자로 쓰는 세 마을, 거진·거상·거하는 삼각축으로 터 잡아 살아온 형제마을이다.

마을 이름을 제각각 쓰게 된 내력을 이해하기 곤란할 정도로 서로가 지척인 공동체. 거진마을이 형님뻘이다. 옛 영화를 추억할 필요도 없이 현재 남아 있는 규모로도 압도적인 70여 가구다. 둘째 거상마을은 25가구 쯤. 여기다 막내인 거하마을 5가구를 합해 아직도 100여 가구가 촌락을 이뤄 조상 대대로의 터를 지켜오고 있다.

하지만 옛 모습 간직하며 변화가 더딘 촌락은 자고 나면 ‘상전벽해’ 하는 도심 속에서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 행정동상 용두동에 속해 있는 마을은 현재 진입로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

몇 년 전 입주한 용두주공단지와 최근 공사가 한창인 신생 아파트들 속에 쥐죽은 듯 납작 엎드려 있는 탓이다.

삼각 축을 이룬 세 마을의 중간 지점에 밑둥 굵은 플라타너스 몇 그루 울창한 그늘을 드리고 있다. 천혜의 해가림 아래 모정이 평화롭다.

농사에 전력을 쏟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정 위쪽에 자리 잡은 저수지엔 물이 넘쳤다. 그리고 그 물은 하늘만 쳐다보던 천수답들의 생명줄이었다. “지금은 논들마다 모두 관정을 팠지. 저수지의 쓸모가 없어졌어.” 주민들이 ‘헛방죽’이라 부르는 웅덩이는 현재 잡초만 무성한 채 물기를 찾기 힘들다.

거진마을의 진(津)은 나루를 의미하는 한자다. 마을 이름 하나에도 역사와 내력을 접목시킨 것이 조상들의 지혜.

‘진’을 좇아 배 드나들었을 지점을 추적해보지만 도시화돼 가는 마을에선 흔적조차 아득하다.

“16살에 시집와 평생 떠나지 않았다”는 심상보(86) 할머니가 궁금증을 해소시켜 준다. 담양군과 인접한 이 마을 앞으로 흐르고 있는 영산강이 열쇠다. “논밭이 마을 앞에만 있는 게 아니었어. 영산강 너머에도 많았지. 허리까지 차는 물을 하루에 몇 번을 건너다녀야 농사를 지을 수 있었어.”

“남정네들은 배꼽까지 차는 물살을 헤치고 그냥 넘나들었다는 그 강엔 나루가 두 군데에 있었다”는 것이 심 할머니의 증언이다. 삯을 받고 배를 띄웠던 전업 뱃사공이 마을의 보배였던 시절의 얘기다. 뱃사공을 몰아냈던 변화와 발전은 이제 마을의 존폐마저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파트들은 이미 마을 앞까지 진군해 있는 상황.

몇 해 전엔 재개발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업자들이 나서 주민들의 동의서를 받고 다니기도 했다.

“보상가가 안 맞아서 주민들이 반대했제.” 거진마을 차동준씨는 “땅값만 맞으면 언제든지 도장 찍지 않겠느냐”고 했다. “언젠가는 떠나게 될 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은 저지된 것이 아니라 잠시 유보돼 있음을 아는 주민들의 체념이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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