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밀려온다 기로에 선 마을들]
<9>치평동 노루목 마을

▲ 뒷산이 노루목 형국이라고 해서 붙여진 노루목 마을. 마을 건너편으로 모텔 등 대형 건물이 들어서고 재개발이 예정되면서 옛 모습을 잃을 전망이다.

“조용하고 순한 마을이제. 마을 사람 모다 좋아서 평생 삼시로 누구 해치고 그런 사건은 없었응께.”

순해서 살기 좋았다고 입을 모으는 마을. 서구 치평동 노루목 마을이다. 운천저수지 옆 백석산 자락, 향림사 절 아래부터 광송간 도로 앞까지 늘어서 있다.

애초 20여 가구가 채 못 된 조그만 마을이었다. 집은 드문드문 들어서 있어 토박이들은 집 숫자를 아직까지 헤아린다. ‘감나무네, 이가네, 김가네, 좀 더 가서 아무개집’ 하는 식이다. 한국전쟁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백석산 옆으로 자잘한 야산이 들어서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점차 산은 헐리고 주택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마을 모습을 갖추었다. 50년 가까이 살았다는 이남예(78) 할머니는 “인자 다들 떠나불고 외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산다”며 “토백이들은 몇 사람 안된다”고 말했다.

노루목 마을은 백석산이 노루목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보통 ‘노루목’은 산등성이나 골짜기가 길게 늘어진 곳에 잘 붙는다. 하지만 이름과 관련해 다른 얘기도 전해진다.

이 할머니는 “왜정 때 산을 토막 내는 공사를 하는데 땅에서 생피가 흘러 나왔다”며 “이 피가 노루 피라고 해서 노루목이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그는 “이 피 때문에 공사가 중단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몇 가구 살지 않았지만 참말로 존 동네”였단다. 40년 넘게 살았다는 정모(67)씨는 운천저수지 물이 깨끗했고 마을 샘물이 좋았다고 회상한다.

“마을 앞으로 운천저수지서 흘러나온 물이 참말로 맑고 깨끗했어. 마을 사람 모다 빨래 이고 나가서 빨어 옷 입히고 그 물로 모욕하고… 마을 가운데는 샘이 있었는디 물맛이 좋아 전부 여그서 떠다 묵었어. 인자는 수도 묻음시로 같이 묻혀부렀는디 지금도 물이 졸졸 흘른당께.”

마을 뒷산은 백석산이다. 예전 상무대가 있을 때는 부대용어를 따서 ‘에이고지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백석산은 현재도 체육시설이 들어서는 등 개발이 돼 시민들의 휴식공간 역할을 하지만 초기에는 더 예뻤다는 게 마을 주민의 설명이다.

노루목에서 나서 자랐다는 송정오(68)씨는 “백석산 등산로가 좋아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았다”며 “날마다 나무하고 산에 올라댕기고 뛰어 놀았다”고 회상했다.

노루목은 90년대 중반 건너편에 있던 군부대 상무대가 이전하면서 고립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는 각종 모텔과 대형 건물들이 들어섰고 최근에는 모 건설사가 아파트를 짓는다며 재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노루목 마을 사람들은 희비가 엇갈린다.

“타지서 들어온 사람들, 돈 있는 사람들은 재개발 된다믄 좋아하겄제만 여그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벨로 좋을 것이 없제. 집 팔고 간다고 해봐야 어디로 가겄어.”

박준배 기자 nofate@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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