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밀려온다 기로에선 마을들]<11> 서구 원마륵마을
30채 이미 비워…주민들 “차라리 마을 전부 개발을”

▲ 원마륵 마을 노인회관 옥상에서 바라본 특급호텔과 아파트 사업 예정 부지. 왼편 웨딩홀에 호텔이 들어서고, 오른편 김대중센터 맞은편 마을 한켠으로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옛부터 이 마을에는 평사낙안(平沙落雁) 형국이라 말이 전해졌다. 모래펄에 기러기가 내려 앉을 정도로 평탄하고 매끄러운 곳.

그런 예언은 마을 인근에 공군비행장이 들어서면서 현실로 드러났다.

서구 마륵동 원마륵마을. 지금은 광산구에서 떨어져 나와 서구 상무지구의 끝자락이지만, 광산구와 서창동 일대까지 들판이 모두 ‘말구레’라는 옛 이름과 함께 마륵동이었다.

영산강을 끼고 있는 이 ‘매끈한’ 벌판은 늘 세파에서 약간 비켜나 있었다.

상무지구가 개발될 때도 이 마을 코 앞까지 선이 그어졌고, 보다 앞서 군이 상무대를 조성할 때도 부대 철조망은 마을 앞에서 멈췄다. 하지만 이 마을이 지난해부터 지역 언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원마륵 북쪽 4만여㎡에 고층 건물들이 들어선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한 것. 광주시의 전폭 지원 하에 한 건설업체가 10층 높이의 특급호텔과 바로 옆으로 아파트 9개 동 367세대를 짓는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 사업계획은 수많은 특혜 논란 끝에 최근 구청에서 사업계획승인이 났고, 이달 중으로 공사가 시작될 참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지역인 원마륵4길 일대 집 30여 채가 빈집이 됐다. 집 주인들은 보상 받아 마을을 떠나거나, 일부는 마을 내 다른 집으로 옮겼다.

서창에서 열여섯살에 이 곳으로 시집 와 60년을 살았다는 박기모(76) 할머니는 마을을 떠난 경우다.

“아파트 짓는다고 집을 팔라니까 팔고 떠난 거지. 그래도 어째. 60년 살림한 것이 오죽허겄어. 짐 싸서 떠날 때 냉장고야 머시야 다 놔뚜고 몸뚱이만 갔지.”

두고 온 게 어디 살림뿐일까. 북구 오치동으로 이사한 지 일년이 다 되지만, 그는 지금 일주일이면 두 세 차례씩 이 마을을 찾아 텃밭을 일구고 있다.

원마륵동 통장 고진화(56)씨는 그래도 마을 안에서 옮긴 경우다. “30집이 떠나고도 원마륵에 남은 집이 95집 정도 돼요. 농사 짓는 집은 그 중에 20~30세대나 될까요.”

자신이 살던 집은 아직 모습은 남아 있지만, 조만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설 것이다.

“바깥 사람들은 쉽게 말하죠. 호텔 서고, 아파트 오면 이 동네도 따라서 발전할 것이라구요. 하지만 동네 한 켠에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면 이제 여름엔 웃통 벗고 마당에도 못 나가게 생겼어요.”

마을 안길에서 콩을 털던 박노금(72) 할머니도 비슷한 걱정이었다.

“지금도 우리 마을은 김대중센터보다 한참 낮은데, 아파트 짓는다고 축대 올리고 건물까지 올리면 그나마 남은 마을은 완전히 파묻히는 거요. 차라리 개발 할라믄 아예 마을 전부를 해불제.”

광주시는 관광객 유치와 국제회의 산업유치 등을 이유로 특급호텔 사업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마륵마을 사람들의 입장에선 지금껏 입은 피해의 연장선 외의 그 이상도 아닐뿐이다.

고진화 통장의 토로는 바로 그 지점에 닿아 있었다. .

“김대중 컨벤션센터가 마을 앞에 들어선 뒤로 다들 좋아질 거라 했어요. 헌데 아니예요. 마을 안길로 다니는 차들 늘었지. 안그래도 비행장 소음도 심한데, 공연한다면서 소음도 늘었어요. 이제 마을을 내려다보는 고층 건물까지 들어서면 우리 마을은 계속 피해만 보고 사는 셈이예요.”

이광재 기자 jajuy@gjdream.co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