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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결핵환자 돌본 `아름다운 역사’
[양림동 문화를 찾아서]<2>우일선 선교사 사택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
정상철 dreams@gjdream.com
: 2007-11-15 07:00:00
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동향이다. 서양식 건물이지만 한국의 건축양식도 도입했다.

양림동산의 한쪽 기슭, 광주기독병원 뒤쪽 길을 따라 막다른 골목까지 곧장 올라간다. 길의 끝에 오래된 건물이 하나 서 있다. 우리의 건축양식은 아니다. 회색벽돌을 쌓아서 만든 2층집이다.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 ‘우일선 선교사 사택’이다.

그 건물이 정확히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일선 선교사의 한국에서의 행적에 비추어 1911년에서 1927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우일선(wilson) 선교사는 1905년 워싱턴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그 해 남장로교 해외선교부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서양식 건물이지만 한국의 건축양식도 따랐다. 해가 뜨면 빛이 곧바로 건물의 정면 외벽에 닿는다. 건물의 방향은 동향이다. 광주에서 우일선 선교사가 보냈던 시간도 빛과 같은 것이었다. 한센병 환자를 돌봤고, 결핵 예방에 온 힘을 쏟았다.

우일선 선교사가 활동하던 시기 광주는 작은 면 단위에서 전라도의 중심으로 거듭난다. 근대적 교통과 행정의 기능에 의해서였다. 1914년에 호남선이 개통됐지만 광주는 여전히 신작로와 영산강을 통해서만 외부와 연결됐다. 1922년 호남선이 경유하던 송정리와 광주 사이에 지선이 부설된다. 같은 해 광주와 담양을 잇는 철도도 개통된다. 그때부터 7∼8일이 걸리던 서울길이 10시간 거리로 단축됐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근대 교육의 기회도 거의 없었다. 그때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된 곳이 양림동이다. 그 중심에 선교사들이 있었다. 한국으로 건너온 우일선 선교사는 전남 광주 선교부로 부임했다. 오웬 선교사를 도우면서 의료를 통한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는 놀런 선교사에 의해 잠시 문을 열었다가 중단된 광주기독병원을 다시 열고 원장이 되었다.

우일선 선교사의 가장 큰 활동은 광주 나병원의 개원이었다. 하늘이 내린 형벌로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들은 그의 힘으로 새로운 숨길을 열었다. 광주 중앙교회 안에 유치원을 설립하기도 했으며 교회 교육에도 힘썼다. 그의 활동 범위는 광주 양림동으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전남지역을 돌며 순회 의료 전도를 펼치기도 했다. 특히 그 당시 사람들의 목숨을 무수히 빼앗아갔던 결핵 예방에 큰 공헌을 남겼다. 여천군 율촌에 ‘애양원’을 신축하기도 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그의 한국생활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집이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 구조로 만들어졌으며 지하는 창고와 보일러실이었다. 1층은 가족을 위한 공동 공간으로 거실과 부엌이 있고 2층은 침실과 욕실이 있다.

우일선 선교사 이후에는 타마자 선교사, 보요한 선교사, 이철원 선교사 등의 사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미국 남선교회가 돌아가고 난 뒤에는 여러 해 동안 방치됐다가 1986년 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남노회유지재단이 매입했다. 광주시는 1989년 3월 건물을 포함한 주위 109평을 지방기념물 제15호로 지정했다.

굳이 우일선 선교사의 아름다운 활동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이 건물은 이제 역사이며 근대문화를 기억하는 소중한 유산이다.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 양림동에 있다.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한센병·결핵환자 돌본 `아름다운 역사’
광주 문화의 물길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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