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림동 문화를 찾아서]<4>보육시설 `충현원’
전쟁 고아들 자식처럼 품은 곳

▲ 50년전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충현원 건물.

 배고픔과 전쟁의 고통 속에서 생명들을 품은 지 50년이다. 반세기의 세월 동안 수많은 아이들이 이곳에서 희망을 꿈꾸었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 국내 현존하는 보육시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양림동의 충현원(忠峴院·1952)이다.

 1948년 여순사건과 1950년 6·25전쟁으로 수많은 고아들이 발생했다. 피폐화된 사회는 이들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하루하루 끼니도 때우기 힘들었던 당시 양림동에선 여순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한 여교사가 버려진 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품었다. 충현원의 설립자 고(故) 박순이씨다. 

 박순이(1921~1995) 선생은 우일선 선교사 집에서 요리사로 지내던 어머니 박애신씨의 영향으로 어린시절을 양림동의 선교사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는 충현원 설립 이전부터 우일선 선교사 사택에서 이미 45명의 고아를 돌보고 있었다. 점점 아이들의 수가 불어나자 시설과 공간이 부족, 그는 양림동 210번지 1447평의 부지를 구입한 후 거처를 새롭게 옮긴다. 1952년 백영흠 목사와 감상욱 한의사, 광주 보이스카우트 창설자인 김학준 선생의 자문을 받아 더 많은 영유아들을 돌볼 수 있는 충현영아원을 세운다. 충현원의 탄생이다.

 이곳은 1957년 충현원으로, 1979년에는 호남사회봉사회로 이름이 바뀌며 광주 최초의 사회복지 예방시설로 탈바꿈하게 된다. 영아원과 아이들 보호시설보다는 어린이집과 아동상담소, 무료 아동병원, 호남종합사회복지관을 세워 사회복지 예방의 역할에 나선 것이다. 보호시설로 소년·소녀 가장들을 수용하고 입양시켜 고국을 떠나보내는 대신, 기관에 수용하지 않고도 친인척 집에서 생활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 받을 수 있게 하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후 이곳은 사직공원 부지로 묶이며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결국 1995년 2월 박순이 선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10여 년이 넘게 방치되며 광주의 역사에서 간과되다시피 한다.

 하지만 고 박순이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미국에서 생활중인 그의 며느리 유혜량 목사가 한국으로 건너와 이곳을 맡게 되면서 2007년 11월 옛 이름인 `충현원’을 되찾게 된다. 이와 함께 광주시의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역사체험과 교육의 장으로 복원 승인도 얻게 된다.

 현재 이곳은 지난 1995년 지어진 충현 어린이집과 함께 1920년대에 건립된 과수원 건물 2채와 1950~1960년대에 건립된 벽돌건물 4채 등 모두 6채의 옛 건물이 50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이중 50년대 지어진 벽돌건물 2채는 충현 어린이집 식당과 아동상담소로 사용되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 7월 “사업비 8억원을 들여 6·25 한국전쟁 당시 전쟁고아 보육시설인 충현원 건물 6채를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입양자 가족 등의 방문시 어린이시설 체험관과 숙소 등으로 활용하고 해외입양 관련 자료 전시관, 선교사회 복지기념관 등의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5월 복원공사에 들어가 2009년 상반기에 충현원 복원 사업이 마무리된다. 현재까지 기본계획과 설계도가 마무리된 상태다.

 충현원 원장 유혜량 목사는 “재 외국인 700만명 중 해외 입양인이 20만명인 상황에서 입양인들에게 그 당시 입양이 불가피했던 상황을 깊이 인식시키며 스스로 자아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며 “충현원을 통해 작게는 과거를 회상하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도움을 주며, 크게는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미래를 향해 힘있게 나갈 수 있도록 긍지를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강련경 기자 vovo@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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