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림동 문화를 찾아서]<5>최승효 가옥

▲ 1920년대 한옥의 변화 과정과 그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최승효 가옥.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사직공원 양림동.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면 아주 오래된 가옥 한 채를 만나게 된다. 영상예술센터(옛 KBS) 아래 위치한 `최승효 가옥’이다. 근세기에 지어졌지만 외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전통가옥이자 광주시 지정 민속자료 제2호다. 주변의 낡고 오래된 가옥들과 함께 시간 흐름에 묻힌 이곳은 `최승효 가옥’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없다면 그 존재를 찾기가 힘들다.

 최승효 가옥으로 알려진 이 집은 1921년 독립운동가 최상현 선생이 건립했다. 독립운동으로 가세가 기울면서 1968년 MBC 창립자 최승효씨가 인수해 살기 시작했다. 1999년 최씨가 작고 한 후 방치되다시피하다 3년 전 최승효씨의 3남인 최인준씨가 관리하며 지금의 모습이 됐다.

 정동향의 `一’자 평면 형태의 고택은 정면 여덟칸, 측면 네칸으로 매우 큰 규모의 전통가옥이다. 서쪽인 뒤쪽에 마루를 두르고 미닫이 창문을 만들어 서쪽의 빛을 차단하고 있다. 대청을 제외하고는 모든 장소에 다락을 두고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을 피신시키는 장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조선말기에서 개화기로 이어지는 가옥문화의 변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곳은 건축사적 의미가 크다. 한옥의 변화 과정과 그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

 최승효 가옥에 들어서면 웅장함과 화려함에 탄성이 절로 나오고, 주변의 풍경으로 황홀해진다. 일반 가옥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공간과 재료들로 꾸며져 있다.

 가옥에는 잘 사용하지 않은 화강암을 툇마루로 사용하고 있고, 권위 있는 높은 양반가에서만 사용한 원형기둥을 쓰고 있다. 6~7층의 계단을 기단으로 사용해 집채를 높이고 있다. 기와 또한 일반기와가 아닌 강진의 옹기기와로 특유의 윤택감을 더하고 있다.

 마당 한 가운데 위치한 연못도 집 뒤 암반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를 이용해 집의 오른편을 휘감아 돌게끔 꾸며놓았다. 특히, 집의 방향은 남향이 아닌 정동향이다. 때문에 이 곳 마루에 앉으면 무등산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최인준씨는 “집안 어르신들의 말씀에 따르면 이곳은 최상현 선생이 처음 집을 지을 때 주거보다는 풍악과 시를 읊는 문화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주로 사용했다”며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와 피난처를 제공하기 위해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다락과 지하실을 따로 두어 집을 짓는 등 의미있는 공간이다”고 말했다.

 이 집의 왼편에는 지하 부엌을 개조한 공간이 있다. 최상현 선생과 최승효씨가 쓰던 손때 문은 식기 도구와 생활용품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또 최승효씨의 부인인 최예숙씨가 가옥 주변의 과일들로 담갔던 과실주도 함께 자리를 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최인준씨로 인해 복합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최씨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의 제자로 유럽에서 커뮤니케이션 아트를 전한 설치미술가. 지난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때 백남준 선생과 광주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고향인 광주와 최승효 가옥에 관심을 갖게 됐단다. 최씨는 가옥 주변에 버려지다시피 한 창고를 개조해 본인의 설치작품 등을 전시하는 화랑으로 꾸미고 있다. 뒤뜰에 널다란 공연장도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잊혀진채 화석이 되버린 문화재가 아닌 사람들의 숨소리와 사람 내음이 나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서다.

   강련경 기자 vovo@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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