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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흐르던 자리] <4>현대극장
맞선 보고 영화 보고 꽃선물까지
교통 중심지 위치…도심공간변화와 흥망 함께 해
이광재 jajuy@gjdream.com
: 2008-07-18 07:00:00
광주천을 끼고 들어선 현대극장. 60·70년대 선남선녀들이 맞선 보고 영화 보던 곳이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영화산업 부흥기 흐름 속에 광주의 자본은 영화관으로 몰려들었다. 60년대 초반 광주천변에 들어선 현대극장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현대극장은 60년대 들어 광주시내에서 허가를 얻은 극장들 가운데 제일극장에 이은 두번째로 기록된다. 이후 동구 대인동에 시민관, 북구 임동의 문화극장, 서구 양동의 한일극장, 동구 충장로 동아극장, 그리고 북구 유동의 아세아극장 등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지금까지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곳은 제일극장 하나뿐이다.

현대극장은 61년 최승효·승남 형제에 의해 설립됐다.

‘광주의 극장문화사’의 저자 위경혜 씨에 따르면, 이들 형제는 당시 1억원 가량의 자본금으로 매점과 다방, 그리고 무대공연을 위한 조명실까지 갖춘 지하 1층, 지상 3층의 현대식 건물을 지었다. 이들은 이미 한국전쟁 전부터 광산군 송정읍에 소주공장을 운영했고, 현 제일고등학교 부근에 ‘동천양조장’과 양동의 ‘태평양조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현대극장 창업주는 지금의 광주문화방송과도 인연이 깊다.

이들은 70년에 동구 궁동에 호남TV방송국을 설립했는데, 이듬해엔 기존에 있던 한국문화방송 광주국(라디오)도 인수병합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80년 제5공화국의 언론통폐합에 의해 주식지분의 절반 이상을 내놓아야 했다. 


 ▲ 극장은 문을 닫았지만 극장 한 켠 꽃집은 26년 째 영업중이다.

현대극장의 흥망은 광주도심의 공간변화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 위치 때문이다. 광주천을 끼고 들어선 현대극장에서 광주대교를 건너면 광주 최대 시장인 양동시장과 송정방향으로 이어진다. 반대편으로는 충장로와 금남로로 이어지는데, 이 근처에는 각종 여객회사들이 모여 있었다.

결국 광주천을 중심으로 광주의 남북을 잇는 중심부, 즉 인구와 교통의 중심에 극장이 들어선 셈이었다.

그 때문인지, 현대극장 내에 있던 ‘현대다방’은 선남선녀들의 맞선 장소로 인기가 높았다.

지금도 극장 한켠에서 26년째 ‘현대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심일순(58) 씨는 “과거 현대다방은 맞선 보는 장소로 광주시내에서 아주 유명했다”고 했다. 선을 본 뒤 맘에 들면 영화도 보고, 돌아가는 길엔 선물용 꽃을 사가는 손님이 많았다니, 요즘말로 ‘원스톱’시스템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도심은 끊임 없이 변화한다.

한 때 인구와 교통의 중심지였던 현대극장 주변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76년 대인동 시외버스터미널의 등장부터다. 기존의 물류와 인구의 동선이 달라진 것이다. 변화된 동선은 80년대에 시외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한 소극장들의 잇따른 개관으로 이어졌다.

영화산업계의 변화도 기존 극장들을 힘들게 했다.

특히 99년 문을 연 광주지역 첫 복합상영관 엔터시네마는 현대극장과 같은 도로변에 위치한 데다 거리도 수백미터에 불과했다. 무등극장과 제일극장 등이 복합상영관으로 변화를 모색한 끝에 살아남은 반면, 단일관을 고집하던 극장들은 대부분 문을 닫아야 했다.

현대극장은 2002년 4월말 이정향 감독의 영화 ‘집으로’를 끝으로, 2003년 1월 폐업신고를 한다. 인근 광주천변 태평극장이 간판을 내린 시기도 이즈음이었다.

하지만 현대극장은 나름의 변화를 시도했다. 2003년 말 극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라이브공연 전용시설로 바꾸기로 한 기획사와 임대계약을 맺은 것. 이같은 계획이 가능했던 건 독특한 극장 관람석 내부구조와 좌석배치가 한 몫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60년대 당시의 대부분 극장들은 1층과 2층이 분리된 계단식 구조였던데 반해, 현대극장 내부는 1, 2층 관람석이 단절되지 않았다. 이런 구조 때문인지 1962년 안익태 지휘의 교향악단 연주가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라이브전용극장으로 변신한다는 계획은 지역 문화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광주지역 기존 공연장들은 대부분 다목적홀인데 콘서트 등을 위한 전용극장은 그 자체로 신선했다. 또한 휴폐업상태로 사실상 방치되고 있던 기존 극장 건물들의 재활용 사례로서도 기대를 모았다.

기획사측은 이듬해 여름까지 3억원을 들여 내외부 공사도 했다. 하지만 연습공연 한두차례 외에 본 공연 한 번 못하고 회사는 사업을 포기했다. 현대극장의 변화는 그 것으로 끝이었다. 지금 극장 외벽엔 ‘MAX THEATER’라는 글자간판만 덩그렇게 남아 있을 뿐이다.

부친의 가업을 이은 현대극장 건물 대표 최일준(61) 씨는 “한 때 주변 극장들이 복합관으로 가는 추세를 보고 여러가지로 준비해 보려고 했지만 안 됐고 라이브극장도 오픈만 하고 말았다”며 “당장 향후 계획은 없고 언제 건물이 매각될 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광재 기자 jajuy@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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