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한 영어 능통자

김형남은 평양 출신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로는 흔하지 않게 미국에 유학, 화학을 전공한 엘리트였다.

“일제 시대엔 목포에 내려와 서점을 경영하고 살았다”고 박선홍 선생은 증언한다.

광복 후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김형남 시대’가 열렸다. 한국 내 미국 유학생이나 영어 능통자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김형남은 미군정에 꼭 필요한 일꾼이었던 것. 미 군정청에서 통역 등의 업무에 종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군정하에서 미군은 일본인 관리자가 떠난 대기업에 관리인을 파견했는데, 종연방직은 김씨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1952년 적산불하가 이뤄졌다. 이때 관리인 김씨는 컨소시엄을 구성 전방 소유권을 획득했다.

컨소시엄 당사자는 김 씨를 포함, 포항의 삼일상회 설립자로 대한해운공사 사장을 역임한 김용주 씨, 대한제분 창업자인 이한원 씨 등 3명이었다.

이후 1961년 창업 1세대인 이들은 다시 전방과 일방으로 갈라섰다.

일방은 김형남이, 전방은 김용주-김용성 형제의 몫으로 정리됐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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