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 자주관리…일본인 붙잡아 기술 전수도
종방 뿐만 아니라 당시 전국의 모든 기업·종사자들의 공통된 문제이기도 했다.
해방 당시 공장의 90%가 일본의 소유였고, 기술자의 80% 이상이 일본인이었던 까닭에 그들의 철수로 생산라인이 모두 멈춰 선 것.
조선인 소유의 공장도 원자재의 부족, 판매망의 붕괴에 따라 가동이 중지되는 실정이었다.
노동자들은 이런 현실을 가만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우리의 손으로 공장을 돌리자.” 이른바 `자주관리운동’에 나섰다.
노동자들은 우선 회사 이름부터 바꿨다. 전남방직주식회사였다.
가네보 시절 한국인 직원 중 최고위직이었던 박무길이 공장관리위원장에 올랐다.
`일신방직(당시 전남종연방직) 강탈사’를 썼던 월간 `말’(89년 4월호)은 당시 동료의 진술을 인용, “박무길은 인간성 좋고 똑똑했다”고 적고 있다.
관리위원회가 나섰지만, 기술력 확보가 관건이었다.
<가동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배를 타고 떠나려는 일본인 기술자 7명을 붙들어왔다>는 것이 `광주 100년’의 기록이다.
그들의 기술 전수는 실로 눈물겨웠다.
<일본인 집에서 식모살이하던 소녀를 통역으로 세워놓고 땅바닥에 막대기로 일일이 도표를 그려 가며 기술을 배웠다> 월간 `말’(89년 4월호)이 전하는 당시의 상황이다.
갖은 고생 끝에 다시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조선인 노동자들은 감격했다.
하지만 이 공장은 그들이 주인인 일터로 오래 가지는 못했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