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방울방울 아쉬움은 새록새록

▲ 한때 영화나 공연을 보기위한 관객들로 줄을 섰던 광주의 극장들. 하지만 이젠 역사뒤편으로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다.

 광주의 극장역사는 1910년대 후반 광주좌(光州座·현 무등극장의 전신)에서 시작돼 100년에 가깝다.

 이후 50~60년대 영화 중흥기와 함께 활짝 피었다가 70년대 침체기를 거쳐 80년대 소극장 전성기를 지나 90년대 말 이후 복합상영관과 함께 일어서는 굴곡진 역사 그 자체였다.

 그러는 동안 타 극장과의 경쟁, 시대흐름과 변화 속도와의 경쟁에서 밀려난 극장들이 부지기수였다. 대부분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고, 30~40년 이상 극장간판을 유지해온 곳은 무등극장·광주극장·제일극장 정도에 불과하다.

 광주천변에 있던 한일극장 자리엔 한일 카바레라는 새 건물이 들어섰고, 남도극장 자리는 주차장이 됐다. 신안동 일신방직 근처의 문화극장은 창고 주차장으로 변해 있다.

 그리고 2008년 8월 현재. 광주시내 극장은 모두 15곳, 상영관으로는 112개에 달한다. 자치구별로는 동구 38개관 서구 28개관 북구 18개관 그리고 광산구에 28개관이다. 특이하게도 남구엔 하나도 없다. 객석수로는 2만2508개다.

 극장들 가운데는 광주극장처럼 1935년 이래 단일관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고, 반면 콜롬버스시네마처럼 상무지구와 하남의 극장을 합쳐 모두 20개관을 거느린 곳도 있다. 

 북구 우치공원에 있는 광주 유일의 자동차극장인 패밀리랜드 야외극장도 1개관으로 집계돼 있다. 하지만 공간을 임대해 운영해온 사업자가 경영난을 이유로 공간에 대한 재계약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어찌될 지 모를 일이다.

 `영화가 흐르던 자리’는 그 사이에 있는 극장들에 초점을 맞춰왔다. 

 한때 관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곳. 일부는 건물을 공연장으로 바꾸거나 카바레 등을 유치하는 등 재기의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공간이 남아 있다면, 그 곳을 뭔가 다른 문화적 공간으로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대부분 실망으로 끝났다.  

 

 개인자본 정점이자 당대 문화시설 정점

 광주의 극장들은 50~60년대 한국영화제작의 활황에 맞춰 붐을 일으켰다. 지역의 자본은 너도나도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영화뿐만 아니라 인기 연예인의 공연까지 더해지는 당시 극장은, 지역의 문화시설의 정점을 차지했다. 

 광주시내라 해도 초가집들이 즐비하던 시절 3, 4층짜리 극장건물을 세운다는 것은 막대한 자본이 아니고선 불가능했다. 요즘 같으면 주식이나 투자(최근 경기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지만)에 몰려들듯, 대개 다른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이들이 당시 첨단 문화시설인 극장 건립에 뛰어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 들어선 극장들은 영화 외에 복합문화시설을 지향했다. 60년대의 아세아극장이나 80년대 들어선 아카데미극장이 다방이나 예식장, 카바레 또는 나이트클럽을 부대시설로 운영했던 사실은 이를 반증한다.

 물론 현대극장처럼 극장 내 다방이 광주시내에서 청춘 남녀들의 최고의 맞선장소로 꼽히는 경우도 있었다. 그 역시 당시 극장이라는 공간이 젊은이들의 문화를 끌어당기는 힘을 보여준 사례다.

 

 흥행·폐업·압류와 경매 수순 반복

 하지만 2000년을 전후로 이들 극장들의 영사기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멈춘다. 그나마 그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텔레비전과 비디오의 보급, 영화배급제도의 변화와 복합상영관의 진출 등 영화계 안팎에 밀어닥친 거대한 시대적 흐름의 속도를 따라잡기에 이들의 적응력은 빈약했다. 예술극장으로 여전히 단일관으로 살아남은 광주극장 외에 무등극장·제일극장이 복합상영관으로 변신해 성공했을 뿐이다. 

 계림극장처럼 대규모 리모델링도 해보고, 아카데미극장 처럼 1·2관을 분리하는 시도도 있었다. 현대극장은 뒤늦게 전문공연장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대부분의 극장들이 폐업직전까지 채권자에 의한 가압류나 경매 등으로 매우 `거친’ 방식으로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태평극장·아세아극장·계림극장의 경우 이처럼 `거친’ 과정을 겪은 끝에 부동산이나 건설 관련 업체에 마지막으로 넘어갔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아카데미극장은 교회에 넘어가 내부 기둥만 빼곤 전혀 다른 새옷을 입어야 했다. 특히 태평극장은 최근 철거됐다.

 영사기가 멈춘 극장들의 모습은 처참하다. 특히 송정극장의 경우 그 역사로는 광주에서 세번째지만, 지금 극장건물은 지붕까지 주저앉아 위태로운 실정이다. 인근 구청에 다니는 공무원들조차 그 곳에 극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태반이다. 그렇게 묻혀가고 있었다. 

 일부 극장은 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아세아극장과 계림극장이 그런 사례다. 올해 들어 재개발지구나 도시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되면서, 철거는 불가피해졌다. 최근 현대극장은 외부 청소를 단행했다. 마침 극장 입구에서 최일준 대표를 만났다. 그와 대화하던 중 지나던 50대 시민이 “극장이 새로 문을 연답니까”하고 관심을 보였다. 그는 최 대표를 알아보곤 “이 앞을 지날 때마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꼭 좀 살렸으면 한다”고 했다. 최 대표 역시 “그런 마음 너무 고맙다.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광재 기자 jajuy@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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