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그만 두고 들어온 직장
“전성시대 후배들에 물려주고파”

전방 광주공장 이동호 공장장이 보는 면방산업의 미래는 밝다.

“섬유산업은 기본적인 의식주 중 하나입니다. 결코 죽지 않습니다.”

섬유산업은 단순히 옷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염색·가공·봉제·패션에 이르기까지 영역도 다양하고, 부가가치도 큰 사업”이라는 것도 그가 기대를 거는 대목이다.

이 공장장의 전방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대학 졸업 후 81년 11월 당시 상공부에 특채(7급)돼 공직의 길을 걸었던 그다.

하지만 6개월도 채 버티지 못하고 이듬해 4월 사표를 냈다.

“월급이 컸죠. 당시 공무원 월급은 14만 여 원이었고, 이 중 하숙비 6만 원을 빼고 나면 생활이 불가능했어요.” 공무원 처우가 빈약했던 시절, “이 월급으론 서울서 결혼하기 힘들겠다”는 불안감이 컸노라고 했다. 그러던 차 전방에서 공채가 실시됐다. 전방 계열인 전남고 출신인 이 공장장은 ‘인연을 맺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심리를 갖고 응모했다.

당시 섬유산업계는 최고 전성기. 이른바 ‘배경’없인 취업이 녹록지 않았던 때였다.

어찌 됐든 이 공장장은 전방에 입사했다.

월급은 공무원 때보다 두 배 가량인 24만 원이었다.

“당시에는 그런 사례들이 많았어요. 공무원을 그만 두고 입사하는 것은 예사이고, 선생님·회사원 가리지 않고 방직공장 입사에 애를 썼으니까요.”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공직을 그만 둔 것은 그리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많은 것이 변했다.

하지만 그는 섬유산업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절, 그 현장을 지켜온 증인으로 살았음에 대해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다만 후배들에게도 그런 영광의 시절을 되돌려 주고 싶은데, ‘꿈이 멀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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