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활의 희망상자를 만듭니다”

▲ (주)드림박스 최지용 대표가 지난 18일 북구 양산동 공장에서 생산된 박스를 거래 업체에 납품하기 위해 지게차를 이용, 화물차에 옮겨 싣고 있다.

이제 막 독립했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중이다. 정부지원 없이 인력 확보와 품질, 경쟁력이 가장 큰 과제로 남아있다.

8명의 직원들은 어려운 과정을 거쳤다. (정부)기관의 품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18일 북구 양산동 본촌산단에 있는 ‘드림박스’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미래는 운명이 아니라 노력이고, 품질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과 실천이다’라고 씌인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직원들의 자활과 자립을 돕고, 삶의 질을 향상하자는 사훈이다. 사회적기업 ‘드림박스’는 각종 상자를 생산해 그 수입으로 운영한다.

드림박스는 지난 2004년 자활근로 사업으로 출발했다.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자활·자립을 돕자는 취지였다. 작업장을 확충하고 자동화 설비를 갖춰 발전하면서 자활공동체로 전환했다. 지난해 11월 법인을 설립, 회사 이름도 (주)드림박스로 바꿔 박스 사업 전면에 나섰다. 지난해 12월엔 노동부 지정 사회적기업 인증(제 2008-114호)을 받았다.

드림박스는 초창기 참여자 25명 중 8명이 남아 근무하고 있으며 각종 포장 박스, 카본박스(골판지상자), 컬러 박스 등 박스 전문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지난해엔 9억 원의 매출을 올려 ‘내용’을 갖춘 사회적 기업으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드림박스의 성공 비결은 시장에서 신뢰와 품질로 승부하는 정공법이다.

최지용 대표이사는 “광주·전남지역 박스 시장이 치열해 거래처에 대한 신뢰와 품질로 승부했다”며 “원지(자재)를 현금으로 결제하고 대량생산 대신 주문제작 등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생산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박스 만드는 기술이 없어 외부에서 전문가를 영입했다. 직원들은 전문가에게 2년간 기술을 배웠다. 거래처도 확보해야 했다. 그래서 최 대표는 영업을 맡았다. 지금은 거래처 200여 곳을 확보했다. 기술개발과 함께 직원들에게 직업 교육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최 대표는 “보람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인의식부터 심어줘야 했다”며 “그런 다음 비전을 제시하고 목표와 삶의 구심점을 찾아주자 직원들은 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직원 8명의 월급은 드림박스의 수익에서 준다. 급여는 100만원 수준이다. 김 대표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경제활동에 참여해 성과와 대가를 받을 때 비로소 ‘자활’이라고 했다.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뒤 정부에서 전문가 인력비와 세제혜택, 시설비 및 부대시설비만 지원 받고 있다.

드림박스도 다른 제조업체처럼 경기침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주문량이 많지 않아 올해 매출목표를 낮게 잡았다.

최 대표는 “세계적인 경기 불황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박스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박스는 1차 산업이기 때문에 지금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사업진행으로 발생한 이익잉여금은 사회통합을 위해 재투자하거나 사회에 환원(기부)할 계획이다. 어려운 사람이 자활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일자리 창출이 드림박스의 존재의 이유다. 또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을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가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드림박스만의 특징이다.

직원들도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했다.

류남석 씨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어려웠지만 기술을 전수받아 자신 있다”며 “내가 만든 박스를 소비자들이 사용하고, 물건을 많이 만들어 납품할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 곳에 오기 전 전업주부였던 소선자(56) 씨도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계속 일하고 싶다”며 “회사가 발전해 사회적기업의 역할을 충실히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의 062-573-0362

이석호 기자 observer@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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