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풍암천 (원효계곡~북구 평촌마을)

▲ 무등산 북쪽에서 발원한 풍암천이 풍암제를 지나 금곡마을을 흐르고 있다.

광주의 무등산에서 많은 물줄기들이 발원했고, 그 도랑과 샛강을 터전 삼아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광주천·황룡강·영산강이라는 큰 물줄기만 기억했지, 그 물을 이루는 작은 도랑들엔 무심했다.

광주드림은 광주전남녹색연합과 함께 그 이름 없는 도랑들을 직접 탐사키로 했다. 도랑 옆에는 어떤 역사가 흘렀고 현재 샛강 옆엔 어떤 삶의 모습들이 존재하고 있는지 만나보겠다는 것이다. 덧붙여 도랑~샛강~지류하천~본류로 이어지는 물줄기를 온전히 살리는 방안에 대한 고민도 담아낼 계획이다. <편집자주>



산은 강으로 흐른다. 물줄기 탐사의 첫 권역은 무등산권이다. 무등산에서 발원, 북구 지역을 거쳐 영산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다. 탐사팀이 처음 도달한 곳은 시민들에게 익숙한 원효계곡이다. 무등산에서는 여러 물줄기가 발원하는 데, 북쪽 원효계곡(풍암천), 남쪽 용추계곡(광주천 상류), 서쪽 증심사계곡(증심사천)이 그것이다.

원효계곡의 물은 가뭄도 비켜가고

무등산공원관리사무소 왼편으로 물을 만나러 내려간다. 가뭄이라고 하지만 원효계곡의 물은 많았다. 이 물의 발원지는 무등산 서북쪽이다. 가파른 경사면 위에 내린 빗물이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원효계곡은 계곡의 길이만 9km에 이른다.

깊은 숲속을 시원하게 흘러가는 물줄기. 이제 곧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러 이 계곡을 찾을 것이다. 원효계곡에는 6m에 이르는 폭포가 있었다고 한다. ‘원효폭포’·‘세심폭포’라고도 불렀는데, 1920년대 원효사 주지가 만들었던 인공폭포였다. 이 폭포물을 맞으면 신경통을 비롯한 잔병 치료에 좋다 하여 시민들이 줄을 섰다. 그러나 1959년 원효계곡 일대가 관광단지로 지정되면서 폭포 위쪽에 산장호텔이 지어졌고, 물맞는 모습이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폭포가 없어졌다고 한다.

원효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층층나무 때죽나무 비목 나도밤나무 털조장나무 대패집나무 개서어나무 생강나무 등이 울울창창하다.



깡통에 갇혀 있는 ‘미유기(산메기)’

물을 가까이 하고 싶었던 욕심의 구조물들이 원효계곡을 따라 죽 늘어서 있다. 두 개의 관이 계곡을 따라 설치돼 있다. 이중 200여 m의 검은색 주철관은 도수교 근처에 있었던 인공폭포의 물을 모으기 위한 시설이었다. 10여 년 넘게 방치돼 있지만 오수관로와 묶여 있어 정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철관 옆 흰색은 오수관이다. 원효사지구 20여 개 음식점들의 오폐수는 이 관을 통해 도수교 근처에 있는 처리시설로 운반돼 정화된다. 도수교 아래에 물이 빠져 나가는 시설이 있는데, 원효계곡의 물 일부는 4수원지로 흘러 식수원으로 이용된다.

물은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다. 금곡동을 따라 흐르는 물과 충효동을 흐르던 물이 만나는 합수점을 지나 도롱뇽과 징거미가 발견됐다. 또 계곡 물 안을 들여다보니 엽새우의 흔적들(잎맥만 남은 나뭇잎)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돌 밑에서 무수히 많은 강도래와 날도래의 집도 볼 수 있다. 계곡 안에는 1급수에만 산다는 버들치도 있다. 그러나 계곡 곳곳에는 사람들의 흔적이 지저분했다. 쓰레기들이 곳곳이고, 누군가 먹고 버린 빈 깡통에 미유기(산메기)가 갇혀 있었다. 가위로 캔을 잘라 구출해 물에 놓아주긴 했는데 오랜 시간 갇혀 있었는지 아가미 부분의 상처가 깊다. 미유기, 살아 남았을까?



수변마을의 정취 그리고 단절

광주시지정 문화재자료인 풍암정이 나타났다. 충장공 김덕령의 아우 덕보(金德普·1571~1627)가 세운 정자로,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풍경은 수려하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여전히 정자를 찾아 자연의 일부가 되고자 한다. 정자가 있다는 것은 삶터에 가까이 다가왔음이다. 풍암정 아래에는 1968년에 준공된 풍암제가 자리잡고 있다. 저수지 물에 무등산의 봉우리들이 어린다. 풍암제 아래로는 초록 들판의 향연이다. 풍암제의 물을 끌어다가 주민들은 삶을 일군다. 풍암제 아래의 마을은 금곡(金谷)마을로, 본래 주검동 유적에서 쇠가 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

“우리는 큰 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물이 깨끗해. 가뭄 걱정할 필요가 없어.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내에서 목욕하고 놀지.” 마을에서 70여 년 살았다는 한 주민의 설명이다.

물길 따라 논둑길을 걸어 내려간다.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설치한 호스들이 논마다 빼곡하다. 논이 많이 보일수록 하천 곳곳에 설치해 놓은 보가 눈에 띈다.

금곡마을에서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 만나는 마을이 평촌의 담안(潭安)마을이다. 크게 그늘을 드리운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물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마을 앞 평촌교가 만들어진 것은 1970년 11월. 이전에는 독(돌)이 놓아진 길이었다.

“독 위로 장감장감 걸어서 물을 건넜어. 한 50년 전에는 담양 남면 사람들이 우리 동네 지나서 잣고개 넘어 광주로 장을 보러 다니기도 했는디. 비가 많이 오면 어쩌. 고개 못 넘고 동네에서 묵고 갔제.” 김월남(84) 할머니의 설명이다. 동네 천에는 이제 외지 사람들이 더 많이 놀러 온다. 마을에서 젊은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평촌교를 지난 천은 왼편으로 산과 나란히 흐르는데 이곳도 개발을 피해갈 수 없었다. 강 주변으로 자연스레 산, 논, 강들이 이어져 있었지만 최근 도로가 나면서 많은 농지가 도로에 편입됐다.

“꼭 필요한 도로였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통행량도 많지 않은데…. 도로로 높은 둑이 만들어지면서 천에서 노는 것도 쉽지 않게 됐네요.”

한 주민(41)의 아쉬움이다.

이후 풍암천은 충효교를 지나 광주호에 몸을 섞는다.

글=조선 기자 sun@gjdream.com 사진=탐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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