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권리 돌려도!”

▲ 부산시 금정구청 앞에 있던 육교가 철거되고 횡단보도가 설치됐다.

 광주에서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길, 또는 걷고 싶은 길이 얼마나 될까. 도시계획에 의해 조성된 신도심도 자동차 기준에 맞춰진 보도 체계로 사람이 많이 다니는 보도는 되레 폭이 좁다. 신도심도 이럴진대, 구도심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북구 양산동의 한 아파트 주변은 보도를 설치하면 차도 폭이 좁아진다며 구청은 아예 보도조차 설치하지 않았다. 사람 나고 자동차가 났을 터인데, 정책은 주객전도다. 그러나 도시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 생각을 바꾸면 자동차 위주의 도시 공간에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부산이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 사람이 안전하고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구조물을 철거하고, 보도 공간을 확충하고 있는 것. 지난 17일 그 현장에 다녀왔다. <편집자 주>

 육교 철거, 횡단보도 설치

 17일 부산시 금정구청앞. 횡단보도에 파란 불이 켜지니 사람들이 도로를 건너기 시작한다. 이는 최근에 들어서 볼 수 있게 된 모습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높다란 구조물, 육교가 버티고 서 있었다.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40대 주민은 “노인들이 육교를 건너기 힘들어했다. 횡단보도도 여기에서 몇 백 미터 떨어져 있어서 무단횡단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이전의 모습을 회상했다. 여고 2학년 주소라 양도 “횡단보도가 생겨서 편하고 좋다. 이전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걷고 싶은 도시 부산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육교철거 및 횡단보도 복원 △차없는 거리 운영 △신호등 안전시설 확충 △스쿨존 및 실버존 정비 △학교 통학로 개선 △보행 낙후지역 보도설치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된 1차년 보행환경개선계획은 테마거리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어 2006년부터 2010년까지는 보행환경이 열악한 곳을 개선하는 실질적인 정책 쪽으로 초점이 이동했다.

 육교는 차량 위주의 교통 흐름을 위해 설치된 상징적인 시설물이다. 특히 계단으로만 구성돼 있는 육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아예 이용할 수 없다.

 부산시는 2005년부터 경찰청과 협의해 차량 실태조사, 교통 신호주기 변화 등을 고려해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육교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도심 190여 개의 육교 중 최근까지 25곳이 철거됐다. 올해까진 22개소가 더 철거될 예정이다. 올해 26개소 철거에 들어가는 비용은 17억9500만 원. 전액 시비다.

 주민들의 요구도 반영한다. 야간에 교통사고가 빈번했던 남구 문현동 메가마트 앞 육교는 주민들의 요구로 지난해 철거되고 횡단보도가 놓였다.

 

 학생들에게 안전한 보도 돌려주기

 금정구청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브니엘고등학교 등 4개 학교가 몰려 있다. 학교 앞은 외곽 도로로, 차량들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동하고 있었다.

 최근 이 학교 앞에 작지만 큰 변화가 있었다. 보도가 없던 곳에 보도와 버스정류장이 생긴 것.

 학교 관계자는 “아이들이 하교할 때 도로 위에서 위험하게 버스를 기다렸는데 보도가 생겨서 안전하게 기다릴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리던 곳만 보도가 없었는데, 바깥 쪽으로 공간을 확보해 보도를 조성한 것이다.

 부산의 보행권 확보 사업의 성과다. 이는 계속 확장되고 있다. 브니엘고등학교 사례처럼 시는 ‘보도 신설, 안전펜스 설치, 미끄럼방지시설 설치’ 등 92개교의 통학로 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초등학교·유치원 주변의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사업이 있긴 하지만 중·고교의 통학로 개선 사업은 유례가 없었던 터다.

 사업 추진 방식도 주목 대상이다. 눈에 보이는 곳만을 주먹구구식으로 정비하는 게 아니라 실태조사를 근거로 꼼꼼하게 사업을 진행한다. 통학로 개선사업, 육교철거 등도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계획과 사업 예산이 반영됐다.










 ▲브니엘고등학교 정문 맞은편에 보도가 만들어졌다.

 

 걷기, 자전거, 그리고 차도로 이어지는 환경

 선진국의 가로환경 체계를 보면 보도-자전거도로-차도의 구조로 돼 있고, 차량보다는 걷는 사람과 자전거 위주다. 구도심 지역으로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공간은 보도 확보가 급선무다. 하지만 도로가 넓은 공간은 자전거도로까지 확충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다. 부산시도 이를 시도했다. 지난 5월 부산 부경대 앞 1.2km 구간 차로를 줄여 차도와 보도 사이에 너비 2.5m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준공한 것. 또 부경대 담장을 허물어 녹지공간을 확보하는 작업도 시도하고 있다.

 주민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떡볶이 장사를 하고 있는 김모(50) 씨는 “운전자들은 조금 불만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시민들은 자전거 타기에 안전하고 나무도 심는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도시의 거리 환경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걷는 기본권을 넘어서, 나무를 심고, 길을 테마로 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부산시는 이런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정책개발을 진행중이다.

 부산시 교통운영과 관계자는 “보행 환경이 더 좋아지기 위해서는 완벽한 대중교통 체계가 구축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보행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어 걷기 편한 도시로 개선하려는 행정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조선 기자 s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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