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대탐사] 호남정맥과 함께한 역사

▲ 진안군 마령면에 있는 `호남의병창의동맹단’ 위령비. 고 김대중 대통령의 친필이다. <전주보훈지청 제공>

 호남정맥의 대표적인 산 중의 하나인 마이산은 예부터 신비로운 영산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마이산과 관련된 많은 역사와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마이산의 남쪽 공원 입구에는 단군과 태조 이성계, 세종대왕, 고종 등 임금 4위와 조선의 이름나고 충성스런 유림 41위,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순국한 34명의 선열 등을 모신 이산묘(餌山廟)가 있다. 최초 창건한 1925년에는 이태조와 조선말의 거유(巨儒) 연재 송병선, 면암 최익현을 모시고 이산정사(餌山精舍)라 칭하였다. 그 후 1946년 단군과 세종대왕을 모셔 이산사(餌山祠)로 개칭하였으며 이후 조선 개국이래 명유 40위와 고종, 을사년 이후 순국한 선열 33위를 모시고 1948년 이산묘(廟)로 개칭하였다. 이산묘는 현재 네 명의 임금과 조선의 명현, 순국열·의사 79위를 모신 국내 최대의 사당이다.

 이성계는 운봉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금척몽을 꾼 뒤 마이산을 거쳐 한양으로 올라갔다. 연재와 면암선생은 여러 차례 마이산을 방문했고 특히 정재 이석용 의병장은 ‘호남의병창의동맹단’을 결성하고 마이산의 용바위에서 고천제를 지냈다. 마이산에 민족의 얼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 여겨 마이산에 이산묘를 지은 이유다.

 ‘호남의병창의동맹단’을 결성한 이석용 의병장은 호남정맥의 팔공산(1151m) 중봉인 성수산(876m)자락의 임실군 성수면 상동리 삼봉촌에서 1878년 태어났다. 이석용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고 임실·장수·진안·남원·함양·순창·곡성 등지를 돌며 의병을 규합하였다. 마침내 1907년 8월27일 임실 성수산 상이암에서 거사를 논의하고 1907년 9월12일 마이산 용암에서 5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고천제(告天祭)를 지내고 출정식을 거행하였다. 이날 의병장으로 추대된 이석용의 나이 29세였다.

 용바위에서 출정식을 가진 호남의병은 9월13일 진안읍을 기습하여 1년 여 만에 진안읍을 왜적으로부터 수복하였다. ‘호남의병창의동맹단’은 2년 여 동안 진안·용담·장수·임실·전주·순창·광주·곡성·남원·운봉·함양 등지를 누비며 왜적과 크고 작은 접전을 벌여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이후 이석용 의병장은 1910년 8월29일 한일합방이 되자 다시 옛 동지들을 규합하여 1911년 3월 비밀조직을 결성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왕을 암살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어 1912년 ‘임자년 동밀맹단’을 결성하고 중국에서 활동하고자 하였으나 옛 동지의 배신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1914년 4월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임실군 성수면에는 이석용 의병장과 28의사를 모신 소충사가 있다.

  유달리 <호남정맥 공동탐사단>

광주전남녹색연합·전북녹색연합·광주드림·새전북신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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