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대탐사]<7>모래재~만덕산~북치

▲ 호남정맥 만덕산 자락을 꿰뚫고 지나가는 익산~장수 고속도로 교각. 가장 높은 교각이 100m가 넘는다.

 하늘은 점점 높아지고 들녘은 온통 황금 빛깔이다. 연록빛으로 물들어가는 숲과 함께 시작된 호남정맥 대탐사가 5개월째 접어들면서 어느새 결실의 계절을 만나게 됐다. 이번 탐사 구간은 임진왜란 당시 군사적 요충지였던 진안 모래재 능선을 따라 곰티재(웅치 熊峙)~만덕산~북치에 이르는 14㎞ 구간이다.

 오전 8시10분. 모래재의 작은 휴게소에서 출발한 대원들은 산자락을 깎아 만든 공원묘지를 통과했다. 공원묘지 사이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 때까지 잘려져 휑한 산자락을 보며 걸었다.

 8시30분이 지나자 모래재 정상 주줄산에 다다랐다. 금남정맥과 진짜 호남정맥의 분기점이다. 지금껏 걸어 온 호남정맥 67㎞는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 겹치는 구간이다. 이날부터 걷는 모래재 정상의 주줄산(주화산)이 두 정맥의 분기점인 것이다. 금강의 남쪽에 있는 금남정맥은 모래재~운장산~대둔산~계룡산으로 이어진다.

 호남정맥은 장수~마이산~만덕산~경각산~내장산~강천산 등 호남지역 전체를 아우른다.

 

 주술산, 곰티재, 적래재, 산죽길 지나고

 주줄산 갈림길에서 곰티재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군데군데 군인들이 사용했을 법한 시멘트 블럭으로 된 참호가 보였다. 임진왜란 왜군의 전주진격을 저지했던 곰티재를 중심으로 한 호남정맥 줄기가 지금까지도 요새 역할을 했다는 흔적들이다.

 한참을 걸어 9시20분, 능선이 푹 꺼져 있는 고갯길을 만났다. 적래재다. 적래재는 새가 총총 걸음을 한다는 조약치와 곰티재의 중간에 위치한 고개로 완주 소양면과 진안 부귀면 적천마을을 접하고 있다. 적래재는 도로가 개설되기 전 진안의 물산이 전주를 오고간 곳으로 일설에는 전주를 오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도 한다.

 적래재를 벗어나자 사람 키를 넘는 산죽터널이 펼쳐졌다. 바스락거리는 산죽터널을 뚫고 지나가자 산길에 대한광업진흥공사의 콘크리트 표식이 눈에 들어왔다. 신보광산 표지석이다. 산자락에 위치한 신보광산은 한 때 한국 유일의 활석광산이었다. 1980년대 초까지 생산이 이뤄졌던 신보광산의 활석은 점차 중국산에 밀려 쇠퇴했다. 요즘은 폐쇄되고 방치된 활석에 탈크가 함유돼 있고 광산 주변은 우라늄으로 오염됐다는 환경단체의 지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산죽길을 벗어나니 우거진 숲 사이로 펼쳐진 파란 하늘에 눈이 시렸다. 11시20분쯤 곰티재에 도착했다. 곰티재는 왜군이 처음 대패한 곳이고 호남지역 의병·관군의 거점이 됐던 곳이다. 곰티재에는 이러한 역사적 전과를 기리는 웅치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하지만 1979년에 세워진 듯한 전적비와 주변은 곰티재의 명성과 달리 초라했다. 때마침 추석을 맞아 성묘를 하러 한무리의 가족들이 올라왔다. 전적비 바로 옆에 수목장을 해놓은 후손들이다.

 한국전쟁 당시 경찰관을 지냈다는 김한진 씨는 “당시 곰티재는 후생사업의 일환으로 민간에게 보급된 미제 GMC트럭들이 벌목된 소나무를 전주로 수없이 실어 나르는 길목이었다”며 “당시 이른바 공비소탕이 많았고 국군의 소행이었는지 아니면 빨치산의 소행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수십 여 구의 시신이 발견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고 회고했다.

 

 고속도로·온천…할퀸 산등성이

 전적비 아래서 먹은 이른 점심 덕분으로 오후 일정도 빨라졌다. 낮 12시30분을 넘기면서 곰티재를 뒤로 했다. 만덕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가팔랐다. 곳곳에서 암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원불교의 성지인 만덕산의 남쪽에는 원불교 수련원이 위치해있고 북쪽의 완주군 소양 신촌 방향에는 익산에서 장수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만덕산 자락을 꿰뚫고 지나간다.

 산 한 가운데를 100m 이상의 교각을 이용해 터널을 뚫고 도로를 놓은 탓에 차량이 지날 때마다 산자락에 부딪힌 자동차 엔진이 귀를 찌른다. 산비탈을 관통하는 익산∼장수 고속도로는 장수 사람들의 생활풍속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

 과거에는 1시간 이상 걸리던 전주길이 40분 거리로 단축됐고 공무원들은 장수에 머무르지 않고 전주에서 출퇴근한다. 장수사람들도 이제 전주로 일을 보러가게 됐다. 고속도로는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지만 농촌과 도시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더욱 부추겼다.

 만덕산 정상에 오르자 전주와 모악산이 한 눈에 들어왔다. 조금만 더 쾌청했다면 멀리 서해바다까지 보일 듯했다. 만덕산에서 바라보니 호남정맥의 서쪽으로 전주를 비롯해 누런 평야지대가 드넓게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산악지형이 장엄하기 그지없다.

 만덕산을 뒤로 하고 마재를 지나 558봉에서 남쪽을 내려다보니 마이산 회봉온천 공사현장과 진안리조트 계획부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미 사양길에 접어든 온천을 만든다고 15년째 터만 닦고 있다. 온천관광지는 접고 골재장사만 하고 있는 분위기다. 사업타당성도 없는 공사에 호남정맥이 멍들고 있다. 이렇게 잘리고 할퀸 산등성이를 뒤로한 채 이날 탐사 일정이 마무리됐다. 다음 일정은 북치에서 쑥고개까지다.

 글=새전북신문 이용규 기자

 사진=새전북신문 황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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