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대탐사]<12> 소리개재~구절재

▲ 탐사대원들이 눈길을 오르고 있다.

 12번째 호남정맥 탐사 일정은 악천후의 연속이었다. 이른 아침 버스로 탐사 시작 지점인 정읍 소리개재까지 이동중에는 새찬 소낙비가 쏟아졌다. 버스는 모악산~정읍 산외 옛 운암발전소 앞을 지나 30여 분을 달린 뒤 출발지점인 소리개재에 다다랐다. 버스에서 내릴 때에는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이 다시 날이 갰다. 그러나 뺨을 스치는 칼 바람이 대원들을 맞았다.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울 뿐이었다.

 출발 지점인 소리개재는 정읍시 산외면 목욕리와 산내면 방성골 경계에 위치한 고갯길이다. 이날 탐사 구간은 소리개재~구절재로 9㎞ 거리다.

 오전 8시10분쯤 나즈막한 산 길로 접어들었다. 산 길은 밤새 쏟아진 비로 축축했다. 발걸음을 옮긴 지 몇 분이 지나자 탁 트인 골짜기 사이로 끝없는 능선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능선을 바라다보니 뾰족한 `문필봉’ 형태의 회문산이 바라다 보인다. 비록 회문산은 호남정맥 줄기는 아니지만 호남정맥 줄기에서도 손에 잡힐 듯 솟아 있다.

 회문산은 역사의 회한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좌우 대립이 한창이었던 한국전쟁 이후 빨치산의 근거지로 이름났던 곳이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평화롭게만 느껴지는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목욕리(沐浴里)다. 일설에는 갑오농민혁명 당시 전봉준 장군 다음가는 남접(南接)의 실력자였던 김개남 장군이 태어난 곳이라고도 한다. 김개남은 1894년(고종 31) 갑오농민혁명운동 초기에 태인의 두령 김낙삼·김문행 등 1300여 명을 거느리고 백산에 집합, 남원을 점거해 전라좌도를 통할, 전봉준을 능가할 위세를 떨치며 독자적인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김개남 장군이 목욕 즐겨하던 목욕리

 김개남 장군의 공식적인 출생지는 산외면 동곡리로 전해지고 있다. 목욕리(沐浴里)는 말그대로 물이 많은 곳을 뜻하는데 김개남 장군 등은 이곳을 찾아 목욕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목욕리 부근에는 한국 최초의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인 운암발전소가 위치해 있다. 1929년에 준공된 섬진강댐 운암발전소는 정읍시 산내면 능교2리 용암마을의 취수구에서 물을 취수해 6.2㎞의 도수로를 통해 동진강 유역의 농업, 상수원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참을 걸었을까. 하늘이 다시 캄캄해지더니 진눈깨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진눈깨비를 뚫다보니 제법 평탄한 소나무 숲을 만났다. 잘자란 한솔밭이었다. 말그대로 토종 소나무 숲은 대원들의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것 같았다.

 사실, 지리적으로 같은 위도상일지라도 호남정맥을 사이에 두고 기온차가 크다. 내륙인 정읍 산내면과 순창지역은 내륙성 기온을 보이고 정읍 쪽은 해안성 기후를 나타내는 것이다.

 소나무 숲을 지나 작은 봉우리를 넘자 멀리 마치 큰 거북이가 물 속을 들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 왕자산이 보인다. 사자산이라고도 한다. 진눈깨비는 어느새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호남정맥에 깃들어사는 사람들

 오전 9시 정각. 왕자산 바로 밑에 도착했다. 갑자기 확성기 소리가 났다. 정읍 산외면 방곡리 마을이란다. 마을 이장인 듯한 사람이 주민들에게 결혼식 하객들의 차량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이었다. 이처럼 비교적 높지 않은 호남정맥 구간은 산간인 장수 지역과 달리 정맥을 사이에 두고 크고 작은 마을이 형성돼 있다. 호남정맥을 두고 마을과 마을,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전 10시쯤 물외실골 골짜기를 따라 마을로 내려왔다. 정읍시 산내면 예덕리 상례마을이다. 윗보리밭 아랫보리밭 마을이라고도 한다. 멧돼지 사육장도 있고 수십년 된 듯한 개조한 낡은 차량이 축사를 오가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마을 한 켠에는 누군가 심어놓은 곰솔이 자라고 있었다.

 또한 마을은 호남정맥을 사이에 두고 작은 고갯길로 연결돼 있다. 고개에는 옛날엔 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했을 큰 당산나무가 서 있었고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다시 이날 일정의 마지막 고비인 산 앞에 닿았다.

 진눈깨비속의 행군으로 몸이 지칠 무렵인 오전 11시40분쯤 목표지점인 구절재에 닿았다. 구절재 산자락에 주렁주렁 달린 산감에 군침이 돌았다. 몇 개를 따서 먹으니 꿀맛이었다.

 어느새 눈은 잦아 들었다. 대기하던 버스를 타고 산외면 소재지 쪽으로 향했다. 구불구불 길을 내려가자 오른쪽 산비탈에 섬진강댐수력발전소 파이프라인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대원들은 섬진강댐 수력발전소를 방문해 관계자로부터 수력발전소 역사를 배우는 것으로 이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음 구간은 구절재~개운치까지다.  

글=새전북신문 이용규 기자 사진=새전북신문 황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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