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생산 지역에서 소비 
먹을거리 ‘신토불이’

▲ 원주의 생협 매장들은 로컬푸드 확산의 든든한 지원처다. 소비자들이 농산물을 고르고 있다.

 함께 농사를 짓고 필요한 농산물들을 교환해서 먹던 시절. 농촌공동체가 살아있던 그때는, 서로 간에 ‘얼굴 있는 거래’를 했기 때문에 안전하면서도 또한 저렴한 농산물, 먹을거리들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대규모 농산물 유통으로 인한 예전만큼 ‘살가운 거래’들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물론 원산지 표시 확대,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인식 확대 등으로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중앙 물류 체제’로 인한 농산물들의 이동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고 있지 않다. 이는 농산물 이동을 통한 탄소 발생이라는 또다른 환경문제를 낳고 있다. 또한 대형마트, 중간유통업자들이 더 많은 이득을 취하고 실제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겐 보장되는 이득이 나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필요한 농산물이면 수입을 해서 먹든, 장거리를 이동해서 먹든 문제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역 농업·농민 보호, 환경 문제 등 다각적인 것들을 고려해 농산물을 ‘상품’이 아닌 ‘소중한 먹을거리’로 인식하고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을 차근히 진행하고 있는 곳이 있다. 인구 30만의 도시, 강원도 원주시다.

 

 학교급식을 통한 로컬푸드 운동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 확산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친환경 먹을거리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농민들에게 안정적인 판매처와 소득을 보장해주고, 소비자들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받을 수 있는 장점들로 생협의 활동들은 더 왕성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도 있다. 대부분 대형 유통업체의 공급 방식과 비슷하게 중앙 물류센터로 농산물이 모이고 각 지역으로 분산되는 것. 원거리 물품 이동으로 인한 에너지 이용 등의 환경 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소비’만이 강조되고 있는 측면도 없지 않다. 강원도 원주는 협동조합운동이 지난 60~70년대부터 활발했던 지역이다. 이는 천주교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 무위당 장일순 선생 등의 영향이 컸는데 2000년대 들어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먹을거리 생협의 매출규모는 커지고 조합원 수는 많아지는데 정말 지역에 기여한 게 뭐냐는 목소리들이 있었죠. 따져 보니 기여한 게 없더라구요. 원주는 수도권을 위한 농산물 생산기지 역할만 하고 있었고, 생산자와 소비자는 ‘거래’로만 묶여 있었던 형태였죠.”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조세훈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협동조합간 협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라는 협동조합의 원칙을 재발견한 지역 여러 생협단체들은 2003년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창립했고, 2004년 친환경농산물을 사용하도록 하는 학교급식지원조례 제정운동을 주도하면서 학교급식 등을 통한 로컬푸드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지역 농민이 생산한 쌀이 지역 학교로  

 지역 먹을거리의 지역 내 적절한 생산과 유통, 소비 등이 갖춰지도록 하는 로컬푸드 운동. 그 운동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농민장터, 단체급식 운동, 소비자 회원에 먹을거리 배송 등이 있을 수 있는데 협의회는 단체급식 쪽부터 방향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때가 2007년.

 원주시는 도농복합지역으로 지역생협에는 소비자 뿐만 아니라 생산자들도 함께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원주지역 친환경쌀 공동브랜드인 ‘해울미’ 쌀(무농약)이 탄생했고 유치원, 어린이집, 초등학교, 중학교 학교급식과 상지대생협이 직영하는 구내식당에 약 200톤 가량 공급되고 있다. 지역 농민이 생산한 쌀이 지역에서 소비되는 것. 물론 품목을 확대하는 게 과제다. 사실 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 도농복합지역인 원주의 쌀, 콩, 밭, 배추 등 32개 품목의 지역자급 가능비율은 50%밖에 안 된다. 그나마 쌀의 자급률은 80.4%로 높은 편인데 반면 복숭아, 고구마 등 상품화하는 작물들의 자급률은 무려 501.1, 422.9%. 로컬푸드 활성화는 이러한 ‘대규모·단작화’되어 있는 농업구조를 바꿔내는 일이기도 하다.

 

 친환경 농산물이 저소득층에게…‘행복을 나누는 도시락’ 

 로컬푸드의 의미를 알려낼 수 있는 또다른 거점이 있다.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 원주점으로 SK행복나눔재단을 통해 ‘로컬푸드 급식센터 사업모델’로 선정, 지난해 9월 원주시 우산동 원주웨스포센터 1층에 문을 열었다. 친환경농산물이 중산층 이상의 혜택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닌, 먹을거리 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개념이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이다. 시의 지원을 통해 결식아동 650명의 급식(반찬)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지역 친환경 식재료와 지역산으로 대부분 반찬을 만들고 있고, 운영비 10% 정도를 제외한 비용을 급식서비스에 쏟고 있다.

 “100% 지역 친환경을 쓰는 것이 아직은 쉽지 않다. 그러나 지역 친환경 식재료, 지역산, 다른 지역 친환경, 국산 등의 순서로 원칙을 정해 사용하고 있다. 좋은 식재료로 아이들의 반찬을 만들어줄 수 있어서 뿌듯하다.” 홍복남 영양사의 자부심이다. 아직은 문을 연 지 4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급식서비스 외에 행사용 주문도시락 제작, 출장뷔페 등을 통해 자립의 꿈도 키워나가고 있다.

 해울미 공급,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 등을 총괄하는 것은 ‘친환경급식지원센터’로 급식지원센터는 노동부의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돼 인건비를 보조받고 있기도 하다.

 

 원주푸드 육성 조례 제정  

 로컬푸드 운동은 단지 원주생협, 원주한살림, 원주의료생협, 밝음신협 등 지역 12개 생협단위들(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의 운동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다. 해울미 쌀을 공공급식에 납품할 수 있는 것도 지역사회의 공감대 형성이 있었기 때문이고, 원주시는 지난해 말 ‘원주푸드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원주에서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가공된 안전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 조례에는 원주푸드 인증위원회를 비롯해 원주푸드의 생산, 가공, 유통, 소비 등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원주푸드 종합센터의 설립, 운영을 명시하고 있다. 실제 원주시는 이미 원주푸드 인증위원회 위촉 작업에 들어갔고 원주푸드 종합센터 설립을 위한 예산 마련의 구체적인 방법까지 모색해놓은 상태다.

 지역에서 난 친환경 먹을거리를 지역에서 순환시키는 방법은 복지, 경제, 환경, 일자리 등 다양한 부분에서 파급효과가 크다. 공공급식의 무농약 쌀 공급으로 촉발된 원주의 로컬푸드 운동은 점점 가지를 뻗어나가고 있고, 지역 먹을거리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글·사진=조선 기자 s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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