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천          

▲ 광주 남구 봉선동에서 발원한 극락천은 남구, 서구 지역을 지나 무진교 부근에서 광주천에 합류하기 직전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진다. 광주천 너머 극락천 합류식관거들이 보인다. <광주전남녹색연합 제공>

 광주는 동구와 북구 지역에 걸쳐 산들이 이어져 있고 때문에 주로 물길들도 이쪽에서 발원한다. 그런데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남쪽 지역을 흘렀던 물길이 있다. ‘극락천’(9km)이다. 복개되긴 했지만 용봉천처럼 택지지구 외곽으로 물길이 살아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극락천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극락천은 남구 봉선동에서 동구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아리랑고개 북서쪽 한태골에서 발원한다. 남부경찰서 뒤편인데 한태골과 주변 골골에서 흘러온 물들은 유안저수지(현 유안근린공원 부지 일부)에 담겼다. 그러나 지금 물길을 거의 찾을 수 없는 것은 산 바로 아래 쪽까지 개발이 밀고 들어왔고 저수지도 매립됐기 때문이다.

 봉선지구는 80년대 광주 최초로 택지개발이 진행됐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제석산 바로 아래까지 아파트들이 밀고 들어왔던 것은 아니다. 유안저수지가 있었다는 것은 그 곳이 상당히 고지대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안저수지와 이어지는 녹지는 석산으로 불렸다. 지금 한 대형마트가 들어온 자리다. 이 일대는 봉선2택지지구로 개발됐다. 제석산 바로 아래쪽까지 아파트가 들어서 물길을 찾기 힘든 이유다.

 

 유안저수지·조봉저수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또 하나의 물줄기가 있었다. 남구 제석산에서 내려온 산물은 대각사 옆을 흘렀다. 대각사 바로 옆은 예전에 미나리방죽이었다.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해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대각사 쪽과 함께 현 남구청 자리가 조봉저수지였다. 유안저수지와 조봉저수지 위쪽이 바로 물이 발원했던 곳이다. 그러나 두 저수지 다 매립됐고 80년대, 2000년대 택지개발이 진행되면서 물길은 사라졌고, 도로와 아파트가 들어섰다.

 “논·밭이었어. 딸기밭도 있었고, 똥통거리라고 그런 것들 버리는 데도 있었지. 허허벌판이 이제는 금싸라기 땅으로 바뀐 거야.” 방림동에서 40년 가까이 산 윤하병(69) 씨의 봉선동 회고다.

 그랬다. 유안저수지에서 흘러온 물들은 방림로를 따라 흘렀고 주변 논·밭에 필요한 물을 댔다. 도로를 보면 옛 물길을 유추할 수 있는데 방림로를 따라 대남로 방향으로 흐르던 물길은 라인효친아파트 앞에서 고개를 넘지 못하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래쪽으로 흘렀다. 물길의 경계는 봉선동과 방림동의 경계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물길을 따라 가다 보면, 물길 주변에 목욕탕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라인효친아파트 건너편에도 ‘온천’이라는 간판을 단 목욕탕이 있다.

 “예전에 그 목욕탕 부근에 지름 3m 정도 되는 둠벙이 있었어. 근데 물이 솟아났어. 물이 깊고 여름에는 엄청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는데 매립된 지 20년이 넘었지.”

 이 곳에서 60여 년 살고 있는 한 주민의 설명. 이제는 추억일 뿐이다.

 

 무등시장 앞으로도 물길 흘러

 조봉저수지(현 남구청) 물은 조봉1길~봉선로~한아름길을 흘러 봉선중앙로 광주은행 사거리 앞에서 유안저수지 방면 물과 만났다. 봉선동은 일률적인 택지개발을 하지 않아 높고 낮은 지형의 흐름이 살아 있다. 오수·우수들은 봉선중앙로·봉선로 등을 따라 흐르다 백운광장에서 만난다. 물길은 더 낮은 곳을 따라 흐르는데 바로 무등시장 앞(현재 군분로)으로도 극락천이 흘렀다. 원래 무등시장 일대는 논밭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극락천 복개가 1976년 무등시장 부근에서 시작됐고 이후 80년대 봉선택지 개발이 진행되면서 그쪽으로까지 확장됐다. 무등시장이 문을 연 것은 복개가 시작된 후인 1978년이다.

 군분로를 따라 물길은 계속 하류 쪽으로 이어진다.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 농성동 등을 지나 터미널 뒷길인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흐르다 기아서비스 센터와 광천터미널 사이 광화로(우측), 무진로로 흐른다. 그러다 시청 민원실 주차장 뒤 무진교 부근에서 광주천과 합류하기 직전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진다.

 사실 물이 이렇게 지금의 큰 도로만을 따라 얌전히 흘렀을까? 큰 도로는 본류를 의미하는 것이지, 극락천만 하더라도 예전엔 상무지구(현 5·18기념문화센터)를 가로질러 질펀하게 흘렀으나 도시화되면서 직강화됐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천

 그렇다면 왜 이 천의 이름은 극락천일까. 추측은 여러 가지다.

 고려시대엔 성지순례를 하는 스님들이 머무는 여관이 있었는데 미륵, 극락, 보살 등 불교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광주천 하류 서창마을에 극락원이라는 여관이 있어서 이 일대의 영산강을 극락강이라 부르게 됐고, 이 천도 극락천이라 이름 붙이게 됐다는 것. 혹은 극락천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천으로, 거스르는 강은 예로부터 부정적 의미로 받아 들여 ‘극락’이라는 불교 용어를 쓰지 않았나 하는 의견이다.

 어찌됐건 극락천 구간은 현재 전부 복개돼 있어 하수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일대는 오수·우수가 합류식으로 돼 있는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분류식 사업이 진행되면 광주천의 유지수량에 조금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조선 기자 s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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