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공감대 확산 불구 제도적 금지 장치는 미흡

▲ 광주에서는 지난 2006년부터 `특정학교 합격 현수막을 반대하는 시민모임’이 현수막 게시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시민모임이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기자회견 모습. <시민모임 제공>

 이른바 ‘명문학교’ 합격자 발표가 나면 어김없이 교문 앞에 걸린 현수막들, 정말 꼴불견이지 않나? 이 같은 위화감, 입시경쟁, 학벌사회를 부추기는 현수막을 문제 삼고자, 2006년 광주지역에서 ‘특정학교 합격 현수막을 반대하는 시민모임(시민모임)’을 결성해 지속적인 각급 학교 모니터링, 진정·민원, 캠페인, 일인시위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활동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집단진정인데, 사건 처리결과만으로 보면 인권위가 정말 얄미워 죽겠다. 해당학교가 현수막 게재행위를 지양한다는 이유로, 별도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며 ‘기각’ 처리했기 때문이다.

 이 사안이 차별행위로 인정되고도 권고되지 않아 아쉬움이 컸지만, 당시에 문제 삼았던 학교만큼은 현수막이 철거되는 소중한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최근 광주·강원·서울시교육청에서는 특정학교 합격자 게시물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각 급 학교에 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는 흐름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근데, 실질적으로 학교현장이 제대로 실천하고 있을까? 2011년 역시 시민모임은 이 문제에 대한 각 급 학교 모니터링 및 사례 수집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일선학교가 지키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초·중학교에는 특목고-자사고-국제중 등 이른바 ‘귀족학교 합격’을 알리는 현수막을 걸어 놓으며, 한 차원 높은 입시경쟁 현장을 체감하기도 했다. 결국 이 문제는 ‘인권위의 안이한 대처’와 ‘실효성 없는 시교육청의 자제요청’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차별행위 인정에 걸맞는 합당한 조치, 즉 인권위 권고나 시교육청의 관리감독 강화가 해결책이라고 본다.

 2007년, 법무부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최초의 기본법’이라는 제정이유를 거창하게 밝혔다.

 당시 차별금지법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압받기 쉬운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법으로 금지함으로써 개인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적어도 법적인 평등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이 강력한 메시지가 허구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법예고안이 발표되자, 경총을 비롯한 재계와 보수 언론들은 ‘학력’에 의한 차별금지 조항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반대의견을 제시했고, 법무부는 학력을 포함한 보수집단이 반대한 7개 조항을 삭제해버린 것이다. 지지부진하던 차별금지법은 결국 17대 국회가 폐회하면서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한국사회에서 학벌·학력 등 차별의 양상이 다양화되고 있으나, 이러한 차별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법이 없어 사회적 소통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 차별금지법은 각종 차별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전환하고 헌법의 평등이념을 실현할 포괄적 인권기본법이자 소수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차별받는 모든 사람을 위한, 차별을 예방하고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법으로서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

 학벌을 유지하기 위한 ‘자율과 경쟁’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현 정부 시대에 가당찮은 바람을 품는 걸까?

 바람에 나부끼는 특정학교 합격 게시 현수막을 무심히 보아 넘기지 않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확산된 만큼 시교육청은 ‘적극적인 관리·감독’을, 인권위는 하루 빨리 ‘권고조치’를,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길 간절히 바란다.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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