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아닌 어른들 자랑거리”

▲ 교문 위에 특정학교 합격 축하 현수막이 걸려있다. 현수막은 학생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른들의 자랑하고픈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내걸린다. <광주드림 자료사진>

 수능이 끝난 지 어느 새 두 달이 훌쩍 흘렀다. 그 두 달 동안 마음 졸이며 하루하루를 두근대며 보낸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이제 해방이라며 놀아 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예 낙담해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많은 학교들은 얼마나 더 많이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영문 이니셜)에 학생들을 보냈는지 자랑하느라 바쁘다. 어느 학교를 가든지 교문 앞에 보이는 서울대 합격 몇 명, 연세대 몇 명, 고려대 몇 명 내지는 특목고 합격 몇 명과 같은 현수막들. 마치 요즘 학생들이 자기네 아파트가 몇 평이고, 부모님이 연봉과 재산이 얼마냐 따위를 자랑하는 것처럼, 학교는 누가 더 잘났는지를 자랑하느라 안달들이다.

 학생들이 철없이 내뱉는 소리들에 일명 못사는 집 학생들은 소외되고 또 상처를 받곤 한다. 그런데 학교들이 지금 하고 있는 그 행동이 학생들의 그것과 과연 뭐가 더 얼마나 다른지 의문이다. ‘자랑하는 소리 듣는 게 아니꼬우면 공부하든가’와 ‘아니꼬우면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나든가’, 그 사이.

 학생들 자신을 포함하여 대다수의 많은 한국 사람들은 학생들이 12년 동안 학교라는 감옥 안에서 지내는 걸 불쌍하게 여긴다. 밖에서 조금이라도 더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조금이라도 더 꿈을 꾸어야 할 시기에 책상 앞에 앉아 교과서나 파고 있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당연한 것이므로 살아가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삶의 통과의례로 여긴다. 옆집 누가 어디를 갔고, 친구 누가 어디를 갔고, 공부 잘하던 누군가 수능을 망해서 재수를 했다는 식의 입소문이 돌고, 그 걸 현수막에 걸어 내보이는 것도 결국 그 때문이다. 잘했으니까 잘한 학생들은 이름이 널리 팔리고, 못한 녀석들과 아직 고3이 아닌 학생들은 그 걸 보고 반성 내지는 각성하라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본보기랄까.

 웃긴 건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저 어른들이 자랑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거다.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다른 이들의 삶을 평가할 수 없고 그 삶들이 누군가를 위한 장식품이 아닌데도, 어른들은 자신들의 잣대를 들이대고 입맛에 맞게 골라 치장하기 위해 그것들을 소비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어차피 한국에서 많은 학생들은 자신이 아닌 누군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고 있으니깐.

 사실 이 문제는 단순히 모든 학교들이 현수막을 내린다고, 또 내리라고 공문을 내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저 현상만 없어질 뿐이지 그 안에 들어있던 본질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여전히 우리 곁을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12년 동안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나는 그런 학생들을 많이 보았었다. 이 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지금 발버둥 쳐봐야 너만 손해라고 그나마 말이라도 하던 학생들.

 특정학교 현수막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수막이 상급학교에 진학한 자와 진학하지 않은 자, 더 나아가 진학한 자들 중에서 어떤 특정학교에 진학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을 차별하고 배제하고 있긴 하다.

 그렇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학벌을 조장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교육제도와 학교라는 체제와, 그리고 어른들이라는 존재가 학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등 수많은 연결고리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다.

 눈에 보이는 차별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은 등한시해도 되는 건 아니기에, 이제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나는 이 문제가 눈에 보이는 것만 가리는 그런 식으로 해결되지 않았으면 싶다.

이현근 <광주인성고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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