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 새노조 광주전남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미례 감독.
“보복성 전보로 홀로 유배당한 이들 많아 놀랐다”

 “KT의 역사는 대한민국 정보통신의 역사입니다.” KT 공식 홈페이지에 ‘자랑스레’ 게시된 내용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KT를 이뤄놓은 노동자들의 역사는 어떨까? 그리 자랑스럽지 않다. KT의 역사를 만든, KT 노동자들의 역사는 ‘수난사’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울면서 KT를 떠났고, 어떤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통신 시절에 입사, 2002년 민영화된 KT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중년이 된 노동자들도 있다. 회사의 명예퇴직 요구를 거부한 이들은 원거리 발령을 받거나, 불가능한 업무를 부여 받고 지독한 왕따를 당한다. 그럼에도 ‘인간다운 KT’를 꿈꾸며 싸우고 버텨내는 노동자들이 있다. 다큐 ‘산다’는 그들의 이야기다. 30일 다큐 ‘산다’의 공동체 상영회가 광주영상복합문화관에서 열렸다. 이날 공동체 상영회 이후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한 김미례 감독을 미리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80~90년대 대오 이뤘던 노동자들 어디에?

 

 “요즘 비정규직 문제가 워낙 사회적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 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떨까? 80~90년대 노동자 대투쟁의 경험이 있는 중년 정규직 노동자들 말이다. 거리의 수많은 대오를 이뤘던 노동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의 상황은 더 나은 것일까. 이런 의문에서 출발했다. KT 노동자들이 그런 흐름에 서 있었다.”

 김 감독이 KT 노동자들에 카메라를 들이댄 이유다. 명퇴 압박으로 나가느냐, 견디느냐 두 가지 선택을 강요받은 노동자들. 어떤 선택을 하든 험난한 앞길이지만, 감독은 특히 아직도 민주노조 운동을 하며 회사의 명퇴 요구에 맞서 끝까지 ‘버텨’내고 있는 노동자들에 주목했다.

 짐작은 했지만 영화 촬영하면서 KT 노동자들의 고통을 더 많이 알게 됐다는 감독이다.

 “2년 반 정도 KT 노동자들을 쫓아다니면서 정말 놀랐다. 보복성 전보 인사로 홀로 떨어져 외지에서 지내고 있는 노동자들이 그렇게 많은 줄도 몰랐고, 혼자 버텨야 하는 일상이 그렇게 힘든 줄도 몰랐다. 이런 모든 일들이 은밀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는 본보기가 KT 인력관리시스템이라는 걸 영화 작업 속에서 확인한 거다. 일을 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했다. ‘개인이 못나서 그런 것이다’라는 인식을 주입시키고 개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방식이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이건 기업이 저지르는 범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숫자로만 추산되는 자살율과 연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 자기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산다’ 속에는 악명높은 상시적인 인력 퇴출 프로그램과 강제 명예퇴직에 시달리며 불안한 미래와 현재의 절망을 그들의 방식대로 이겨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 동력은 무엇일까?

 “사실, 나도 많이 궁금했다. 저런 상황을 당하면서 왜 저렇게 버티고 있는 것일까? 인간적으로 너무 피폐해지는데 무엇이 그들을 견디게 만드는 걸까? 여러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마 그 중엔 신념의 문제가 있다.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면 안된다는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 여기서 지면 힘들게 싸워온 지난 삶을 부정하게 된다는 절박함들이다. 지금 ‘이 삶’도 힘들지만 ‘저 삶’도 좋은 삶은 아니라는 생각이 있다. KT 노동자들은 힘들지만 서로 모여서 의지하며 힘을 내는 것 같았다. 혼자서는 안되지만 서로 챙겨주고 끈끈하게 의지한다. 그러면서 힘을 받고 또 일을 하고 그랬다.”

 ‘비인간적’ 상황에서 견뎌낼 수 있는 동력은 ‘인간’인 셈이다.

 

 2년 반 KT노동자들 쫓아다녀보니

 

 김 감독은 지난 1997년 ‘대구건설노조 투쟁기록’을 시작으로, 일용직 목수인 아버지의 하루를 기록한 단편 ‘해 뜨고 해질 때까지’(2000년), 레미콘 운수 노동자들을 다룬 ‘노동자다 아니다’(2003년), 홈플러스의 전신인 이랜드그룹 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장기 투쟁을 다룬 ‘외박’(2009년) 등 노동자들의 삶을 끊임없이 담아 왔다. 오랜 세월 노동자들의 삶을 지켜봤다. 어떤 변화들이 감지됐을까?

 “파편화 돼버린 현장이 보인다.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이어질 수 있는 끈이 모두 끊어져 버린 구조가 돼 버렸다. 직고용에서부터 간접고용까지 고용 형태도 모두 제각각이 돼 버렸고 누구랑 싸워야 하는지도 안보이게 만들어 버렸다. 실제 사용자가 누군지도 모른다. 모든 것들이 개개인의 문제처럼 돼 버렸다. 우리 나라 자살율 증가율이 세계 1위더라. 나는 이런 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 자살의 원인이 가정불화라고 한다. 하지만 노동이 삶과 직결된다. 노동이 불안하니 삶이 불안하다. 삶에서 안정이 되면 가정불화가 왜 생기겠나. 구조적인 문제를 봤으면 한다. 누가 이익을 보는지, 누가 이익을 보는 시스템인지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나의 삶이 현재 어떠한가. 힘들지만 지켜야할 것은 무엇인가. 여러 직면한 문제들을 인간으로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했으면 한다.”

 영화 ‘산다’는 KT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노동과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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