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 한 경비원. 경비·감시 업무가 주 업무이지만 입주민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이들의 잡무는 필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광주드림 자료사진>
-내년 최저임금 100% 보장…아파트마다 구조조정 움직임
-2007년부터 악몽 계속 “비인격적 대우·저임금까지 서러워”

 ‘동대표 회의 결과 경비원 구조조정 하기로 결정함.’ 26일 500여 세대인 서구 A아파트에서 동대표 회의가 열려, 기존 4명의 경비원 중 1명을 해고하기로 했다.

 경비원·감시직 등의 임금을 내년부터 최저임금 100% 보장 해야 함에 따른 아파트 단지의 경비 절감책이다. 대부분 아파트에서 해고라는 칼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2007년, 정부가 ‘감시·단속적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률 인상을 추진하면서부터다.

 이후 경비원들의 최저임금 적용률은 2007년 70%에서 2008~2011년 80%, 2012~2014년 90%로 단계적 인상을 거듭했고, 내년부턴 100%가 적용된다.

 예의 A아파트도 해고를 택했다. 기존 4명을 그대로 고용하기 위해서는 입주민들의 관리비가 인상돼야 하므로 구조조정을 하기로 한 것. 입주 당시 A아파트엔 12명의 직원이 세 동을 관리했다. 경비실은 각 동마다 있는 2개의 아파트 출입구에 설치됐다. 하지만 현재 경비실은 사용되고 있지 않아 자물쇠로 굳게 잠겨졌다. 경비원이 줄면서 빈 경비실이 늘어나자 이를 모두 폐쇄하고 아파트 공터에 따로 따로 경비실을 설치한 것이다.

 이곳에 일하는 박모(58) 씨는 최근 구조조정 소식을 듣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5일 박씨를 만나기 위해 경비실을 찾아갔지만 문에는 ‘순찰중’이라는 안내만 붙어 있었다. 그 시각 박 씨는 낙엽을 쓸어 담고 있었다. 순찰이라는 본연의 임무가 있지만 아파트 단지를 깨끗이 하지 않으면 주민들의 민원을 가장한 질타가 이어지기에 어쩔 수 없는 작업이다.

 당초 경비·감시직에 최저임금을 유보한 건 업무강도가 비교적 약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과연 그럴까. 박 씨는 경비를 비롯 청소, 택배, 아파트 주차관리, 화단 관리까지 맡고 있다.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 업무는 따로 청소노동자를 고용해야 하지만, 입주민들은 비용 절감을 명목으로 잡무를 모두 경비원에게 일임했다.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이같이 고강도 업무와 함께 경비원을 괴롭히는 건 주민들의 비인격적 대우다. 박 씨는 “자신들(입주민)들이 돈으로 나(경비원)를 고용했으니 당연한 처사라는 논리로 대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입주민 한 분이 분리수거를 하지 않은 채 버리려 하기에 막았는데 `어디서 감히 훈수질이냐’,`돈을 받는 대로 좀 해야지’라면서 욕을 해요. 기분이 나쁜 것보다는 무슨 말을 해야될지 어안이 벙벙했죠. 옛날 노비가 딱 저같은 처지였을 것 같습디다.”

 그렇게 고강도 업무와 비인격적인 환경에서 일하지만 그는 받는 돈은 한 달 120만 원 정도다. 그래도 A아파트는 경비를 직접고용해 액수가 더 나은 편이다. 용역업체를 통해 경비를 뽑는 곳은 최저입찰 가격을 적용하기 때문에 직접고용보다 10~20만 원 정도가 낮다.

 하지만 이마저도 더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구조조정이 결정됐고, 4명 중 한 명은 그만둬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박 씨가 근무하는 A아파트는 경비원 4명 중 2명씩 2교대로 근무한다. 2명이 오전 6시30분에 출근해 주간근무를 함께 서고,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는 2명의 근무자들이 교대로 5시간씩 일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다음날 후번 근무자들과 교대 후 하루를 쉰다.

 한 명을 구조조정하고 3명이 되면 내년에는 근무환경이 더 열악해진다. 경비원 3명 중 1명은 청소 및 시설 관리를 담당하고, 2명이 24시간씩 돌아가며 근무하는 방식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야간 5시간의 휴식시간이 모두 없어진 채 일을 해야 한다.

 박 씨는 “내년에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 최고 20만 원까지 오른다고 하는데 근무환경은 더 힘들어져서 차라리 월급이 안오르는 게 나을 수 있다”며 “내년부터는 혼자 밤을 꼴딱 새야 하는데 경비 업무를 제대로 할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600세대인 서구 B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김모(72) 씨는 휴게시간에 몸을 숨기는 게 일상이 됐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휴게시간에는 업무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주민들이 보이기만 하면 일을 시키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쉬는 시간에 왜 나를 찾습니까”하며 수없이 항변하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어 차선책으로 숨바꼭질을 택했다. “휴게실에 문 잠그고 있기도 하고 단지 밖으로 나가 시간을 때우기도 합니다.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와 오후 5시부터 7시까지가 쉬는 시간인데, 오히려 그 때 찾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노동자들에겐 휴게시설을 마련해줘야 한다. 또 야간 노동자가 수면을 취할 필요가 있는 경우, 수면장소를 제공해야 하지만 경비원들에게는 남 일일 뿐이다.

 “밥은 도시락 싸와서 먹고 잠은 경비실에서 잡니다. 그래도 나는 전기장판·티비도 있고 화장실도 경비실마다 있어 사정이 좋은 편이에요. 다른 곳은 화장실이 없어서 외부빌딩에서 일을 해결하거나 집에 가서 목욕하고 몸을 씻는 곳도 있답니다.”

 다행스럽게도 김 씨의 아파트는 내년에 기존 8명의 직원을 그대로 채용할 방침이라고 한다. 하지만 1년 단위로 재계약이 이뤄지기에 고용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그는 “최저임금법으로 우리들이 짤릴 구실만 하나 더 늘었다”면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책을 내놓기보다 차라리 월급 안올리고 그대로 일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한탄했다.

이호행 기자 gmd@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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