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림동 투어 기독교·전통문화가 포인트”
“다시 찾는 방문객들, 해설의 힘”

▲ 양림동을 찾은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해설을 하고 있는 조만수 해설사(오른쪽 위).<남구청 제공>
 “저기 가운데 썩어있는 감나무 보이죠. 어린 탐방객들과 이장우 가옥에 오면 저 나무를 ‘엄마나무’라고 소개해요. ‘너희들이 말 안 들을때마다 속이 시커멓게 타서 속이 저렇게 썩었다’고.”

 봄볕이 따가운 지난달 15일 남구 양림동 이장우 가옥에서 만난 조만수 해설사(양림동해설사협회장)는 솟을대문 바로 옆에 있는 나무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 실제 ‘엄마나무’라고 불러요?” 이 질문에 조 해설사는 웃으며 답했다. “단순히 오래돼 가운데가 썩은 감나무죠. 제가 오랫동안 해설하면서 붙여준 이름이에요.”

 2007년부터 양림동에서 ‘광주근대역사문화탐방’ 해설사로 활동해 온 그는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양림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원주민’이다. 그에게 해설을 듣는 건 곧 양림동 주민에게 해설을 듣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처음부터 양림동을 ‘뼛속까지’ 잘 아는 건 아니었다.

 “저 어릴 때는 앞에 개비석(광주정씨 정엄선생의 효자비와 충견상)만 해도 개비석이라고만 했지, ‘효자비’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직도 첫 해설했던 때를 떠올리면 설레고 우습다고 했다. “처음엔 실수도 많이 했죠. 제일 당황했을 때가 유치원 아이들이랑 다닐 때에요. 기독교 관련 명소들을 돌면서 해설을 하다가 애들 표정을 봤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내 말을 알아 듣는걸까?’ 머리가 하얘지는 거에요. 열심히 해설하다가 정말 많이 당황했어요.”

 초기엔 양림동을 아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양림동을 알리기 위해 아파트를 돌며 포스터 붙이고 학교에 공문보내고, 아는 사람들에 전화를 돌려 ‘양림동 한 번 오라’고 꼬시는 일에도 매달린 때가 있었다.

 “그래서 한 번 해설을 하더라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또 이곳을 찾을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다고요.”

 해설사를 가장한 양림동 ‘홍보대사’였던 셈이다.

 “최근엔 연 19만 명 이상이 양림동을 찾는데, 보면 예전에 왔던 분들이 또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때가 가장 뿌듯하죠. 양림동이 이만치 활성화된 것도 해설사들의 역할이 상당히 컸죠.”

 그는 ‘그냥 도는 것’하고 ‘해설사와 도는 것’하고는 천지차이라고 강조했다.

 이장우 가옥 솟을대문을 가리키며 “솟을대문도 얘기가 있다”고 말을 이었다. “그냥 보면 부잣집 대문이라 크다 이렇게만 느낄 수 있는데, 조선시대만해도 종2품 이상 벼슬을 해야만 솟을대문을 세울 수 있었어요. 돈 있다고 누구나 지을 수 있던 게 아니었죠. 보면 문턱이 없죠? 과거 초헌이라는 가마를 타고 들어오는데 이 가마에 가운데 외바퀴가 달려서 바퀴가 걸리지 않게 문턱이 없게 만들었답니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양림동의 숨은 뒷 얘기들을 짚어서 “양림동을 제대로 보고 듣고 알고 간다는 뿌듯함”을 주는 게 해설의 매력이라는 것이다.

 “차이코프스키 4대 제자인 정추가 바로 양림동 출신이고, 서서평 선교사가 광주 최초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른 것, 이장우 가옥이 원래는 정병호 씨 소유였는데 정병호 씨 부모가 양파정을 지어서 광주시에 헌납했다는 얘기도 우리랑 와서 얘기를 들어야지 그냥 와서 보면 느낄 수가 없어요.”

 양림동의 많은 근대 문화역사 자산이 있는데, 그는 전통문화와 기독교를 ‘핵심 포인트’로 꼽았다.

 “해설도 마찬가지지만 양림동을 올 때 이 두 가지 포인트를 중심으로 기독교는 선교사묘역, 우일선선교사사택, 수피아학교본관, 유진벨 기념관 등을 돌아보시면 좋구요. 전통문화는 이장우 가옥, 최승효 가옥을 거점으로 해서 투어를 하시면 좋습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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