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지 잇는 오월길 안내…“5·18정신 전파”
“80년 5월 함께 못한 부채감, 해설사 길로”

▲ 오월지기 고명숙 씨.
 5월 광주에서 가장 바빠지는 이들이 있다. 오월의 친구이자 오월을 지키는 사람들인 ‘오월지기’들. 매년 이맘때가 되면 5·18을 눈에 담으려는 답사자가 몰려 오월지기들은 오월 알리기에 구슬땀을 흘린다.

 바쁜 와중에도 오월지기 고명숙(59) 씨는 “일 년 내내 오월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월에 관심을 갖고 오월정신을 체감하는 게 꿈”이라는 그다.

 고 씨처럼 오월 안내해설사로 활동하는 오월지기는 모두 36명. 벌써 10년 넘게 활동한 오월지기들도 있고, 매년 시행되는 ‘오월길 해설사 교육과정’을 통해 새로운 오월지기가 탄생되고 있다. 70세 이하의 광주 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오월지기 대부분은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다.

 지난 18일 고 씨를 만나기 위해 찾은 광주 서구 치평동에 위치한 5·18자유공원은 오전부터 체험학습을 온 초등학생들로 북적였다. 이날은 5·18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상황 재현극을 해설하는 일정이어서 해설사들이 각 구역마다 분산 돼 학생들을 맞이했다.

 

▲“어떻게 하면 답사자들에게 5·18 흡수 시킬까?”

 

 고 씨는 올해로 오월지기 10년차가 되지만 “오월의 현장을 찾는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답사자들에게 5·18을 잘 흡수시킬 수 있을지” 연령대별로 지역별로 해설의 방식을 다르게 적용하려는 노력은 그런 마음의 결과다.

 고 씨에 따르면 학생들이 자유공원을 돌며 체험하는 상황극은 5·18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이다. 상황극을 연기하는 배우가 따로 있고 오월지기들이 상황극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

 “시간이 갈수록 역사도 잊히기 마련이에요. 5·18을 경험한 세대가 적어지다 보니 역사인식이 부족해지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세대가 바뀌어갈수록 역사교육이 중요해진다는 뜻인 것 같아요. 오월을 알리고 역사인식을 일깨우는 게 우리 역할이고요.”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벌어진 핏빛 항쟁의 역사는 광주 전역에 흔적을 남겼다. 5·18 당시 역사적 의의를 남긴 장소들은 ‘5·18사적지’로 기념되고 있다. 광주에 총 27개의 사적지를 의미하는 비석과 역사적 서술이 치열했던 현장을 되살린다.

 여기에 사적지를 중심으로 문화자원들을 연계한 5개 테마 18개 코스의 ‘오월길’이 조성돼 있다. ‘인권·민중·의향·예술·남도’라는 오월길 테마는 광주를 상징하는 열쇳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오월지기들은 오월길 답사에 동행해 안내·해설을 도맡고 있다.

 “광주는 오월의 얼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어요. 그 중에서도 사적지들을 잇는 오월길은 남녀노소 많은 답사자들이 찾고 있습니다. 특히 구 전남도청 일원인 금남로는 사적지의 3분의1 이상이 모여 있어서 인기가 좋아요. 신묘역으로 불리는 국립 5·18민주묘지도 꼭 들러보고 싶어 하세요.”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는 광주 금남로엔 5·18민주화운동기록관도 자리하고 있다. 카톨릭센터 자리에 들어선 기록관 역시 해설과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특히 기록관 입구에는 ‘오월길 방문자센터’를 운영하는데, 오월지기 1~2명씩 교대로 상주하며 가이드 역할을 한다.

 

 ▲망월동 구묘역 먼저 추천…오월의 출발점

 

 고 씨는 가장 추천하는 사적지로 ‘망월동 구묘역’을 꼽았다. 국립묘지를 조성하며 구묘역이 통째로 신묘역에 옮겨졌으나 구묘역이 오월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망월동 묘지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머물고 있는 곳이에요. 죽음에 맞닿아 있는 5·18의 정신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곳이랄까요. 광주의 참상을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 페터의 유품이 묻힌 곳이기도 하고, 공권력에 희생된 백남기 농민도 잠들어 계세요.”

 구묘역은 80년 5월 영령들이 묻힌 이래 수많은 민주화운동 열사들이 숱한 우여곡절 속에 안장되었고, 97년 신묘역 조성이후에도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김남주, 이한열, 강경대 등 민주열사들과 노동열사들이 안장돼 있다.

 “80년 오월, 양림동에 살았던 저는 도청 쪽에서 나는 함성과 총소리를 들었어요. 부모님께서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주둔지에 살던 친척들도 피신 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쟁이 난 줄 알았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부채감과 죄책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고 씨는 5·18 관련 교육을 수강하고 자연스럽게 오월지기가 됐다. 그리고 그가 그랬던 것처럼 5·18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5·18을 알리는 일을 사명으로 여긴다. 답사자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있다고 했다. ‘광주정신’의 의미가 무엇일지 생각해보길 권하는 질문이다.

 “민주라는 단어 속에 답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국민이 주인인 세상을 꿈꾸는 일이잖아요. 바로 우리의 삶에서 각자가 주인이 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죠. 그리고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서 만드는 공동체에서 대동정신이 피어나지 않을까요?”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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