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 고집…유족 불참·별도 기념식 상처

▲ 지난 2015년 국가보훈처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로 5·18민주광장에서 제35주년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 주관으로 별도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오월어머니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 모습.<광주드림 자료사진>
 오월의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정부와 국가보훈처가 묵시적인 보이콧을 9년간 자행하며 광주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공통적으로 당선 이후 첫 5·18기념식에 참석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기념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정권의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폄훼 시도는 2009년까지 마무리 제창을 해왔던 공식식순 대신 공연단 합창 식전행사로 대체 편성한 것부터 시작됐다. 당해 11월, 국가보훈처가 5·18민중항쟁 공식 기념곡을 국민 공모를 통해 다른 노래로 대체하려 시도하다가 들끓는 비난 여론으로 이를 철회하며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논란이 불이 붙었다.

 이후 매년 오월 단체와 광주·전남도 정치권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요구에도 국가보훈처는 “이 노래는 진보·노동단체에서 부르는 노래를 대통령이 참석하는 정부 기념식에서 모두가 주먹을 흔들며 제창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있다”며 ‘국민 통합 저해’ 운운하며 제창을 거부했다. 이에 기념식의 상주 격인 오월 단체들이 기념식 참석을 보이콧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옛 5·18묘역, 5·18민주광장 등지에서 별도의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사실상 국가가 진행하는 기념식이 반쪽짜리로 전락해왔던 9년이었다.

 

2010년 기념식선 방아타령 부를 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로 최초로 오월단체 기념식와 국가 기념식이 나뉘어서 열린 건 2010년이다. 당시 기념식을 준비하던 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들어가야 할 마지막 식순에 경기 민요 ‘방아타령’을 편성하려다 격렬한 비난에 직면한 뒤 철회했다. 하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이 식전행사의 악단연주로 밀려난 데다, 오월 단체의 불참으로 기념식의 좌석의 절반 이상은 텅 비었고 매해 이들이 주도하던 ‘경과 보고’ 식순도 빠졌다. 대신 구 5·18묘역에서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가 주관한 별도의 기념식에 오월단체를 비롯, 노동자·시민사회 관계자·지역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그러자 2011년부터 보훈처는 “갈라진 기념식을 봉합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단 합창 형식으로 바꿨다. 그러나 11년부터 12년까지 광주시립합창단의 합창 하에 불러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참석자들의 ‘제창’에 대한 목마름으로 모든 사람이 함께 일어나 제창했다. 여전히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념식에 자리 하지 않아 국무총리가 기념사를 대신했다.

 2013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인 제33주년 기념식에는 5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여전히 보훈처가 오월단체의 ‘제창’ 요구를 거부하면서, 오월 단체들은 16일 공식 기념식 불참을 선언하고 구 묘역에서 또다시 별도의 기념식을 치렀다. 광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공식기념곡으로 채택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면서, 같은해 6월 국회에서는 기념곡 지정에 대한 결의안이 여야 국회의원 158명의 찬성으로 통과됐지만, 정부에 수용되지는 못했다.

 매년 논란이 격화되는 상황에도 정부는 여전히 ‘합창’만을 고집했다. 이로 인해 2014년 5·18행사위는 공식적으로 ‘기념식 보이콧’을 선언하고, 5·18민주광장(구 전남도청 앞)에서 별도의 기념식을 치룰 것을 공포하는 등 공식 행사에는 일절 참여치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제34주년 기념식에는 오월 단체와 유족은 물론, 정치권 인사들까지 참석하지 않았다. 정부는 텅 빈 좌석들을 채우기 위해 상이군경회 등 보훈단체 회원들을 동원 ‘관제 기념식’을 치렀다. 게다가 광주시립합창단에서도 합창 공연을 거부하면서, 각지에서 동원된 합창단원들이 무대에 올랐지만, 연습 하나 없이 급조한 탓에 엉성한 공연을 연출했다.

 

지난해엔 보훈처장이 기념식서 쫓겨나

 35주년 5·18민중항쟁기념식에는 대통령도, 총리도 아닌 최경환 경제부총리(전)가 참석했다. 역시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합창으로 불렸으나, 참석한 여야대표는 이를 따라 부르며 함께 제창했다. 그러나 기념식에 참석한 최경환 경제부총리(전)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전)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았다. 이 해에도 5·18행사위는 ‘보이콧’을 선언했고, 광주시의회에서는 공식적으로 ‘기념식 불참’ 성명서를 내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요구했다. 18일 오월 단체들과 광주 시민사회는 5·18민주광장(구 전남도청 앞)에서 별도의 기념식을 가졌고, 공식 기념식장 앞에서는 일부 시민단체들이 제창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2016년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요구하며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오월 유가족들이 기념식장을 찾았다. 그러나 이날 기념식은 20여분 만에 끝난 ‘졸속 기념식’이었다. 박승춘 당시 보훈처장은 시민들과 오월 유가족들의 반발에 결국 기념식장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날 ‘임을 위한 행진곡’도 여전히 국가는 ‘합창’을 선언했으나, 참석자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제창’을 하는 공식 기념식이었다.

양유진 기자 seoyj@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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