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농부’여서 자랑스럽습니다’
22살 영농후계자…해남서 닭·오리 키워

▲ 농부 박재훈 청년(위)과 할아버지.
 대부분의 청년들이 농촌에서 생활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서울과 큰 도시로만 모여듭니다. 농촌생활이 갖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현실적인 한계들이 그런 흐름을 만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농촌을 기회의 땅으로 생각하고 하나하나 꿈들을 키워가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오늘 만나는 박재훈 청년농부는 농부가 너무 좋은, 농촌생활에서 희망을 찾는 참 멋진 청년입니다.

 

 -자기 소개를 부탁합니다.

 △ 안녕하세요. 올해 2월에 농대를 졸업하고, 해남에 살고 있는 22살 영농후계자 박재훈입니다. 닭과 오리, 강아지를 키우며 배드민턴과 기타를 배우러 다니고, 축산 사업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저의 장점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와도 금방 친해지는 붙임성이 좋고,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보는 추진력과 도전 정신이 강하고, 나이 연배에 상관없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경청 능력이 좋습니다. 단점은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하는 경향이 있어 밤 8시 넘어서 집에 와서 할머니께 혼나기도 하였습니다.

 농부라는 단어가 대한민국에서 자랑스러운 단어가 될 수 있기를 꿈꾸는, 꿈이 정말 많은 청년농부입니다.

 - 박재훈하면 떠오르는 단어 4개가 있다면?

 △ 주변분들이 저를 보고 순박함, 반짝이는 청년, 농촌의 희망, 착한 멋진 청년이라고 합니다.

 (그 외 성실 열정맨, 박가이버, 벌레파브르소년, 꾸준함 이라고 말해 주는 분들도 있답니다~^^)

 

▶“옳은 일 할때는 망설이지 말자”

 - 중고등학교 시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나 사건이 있다면?

 △ 초등학교는 전교생 10명인 분교를 다니고, 중학교는 전교생이 40명이 안 되는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좀 더 큰물에서 놀자고 생각해서 강원도 정선군 관내에서 가장 큰, 각 학년에 4개 반이 있는 정선고등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6월 달쯤 기숙사에서 아침을 먹고 학교에 등교하는데 수학 선생님께서 복도 청소를 하시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아, 우리 학교 주인은 우리인데 우리가 어지럽히고 선생님이 치우시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부터 집게와 파란 쓰레기통을 들고 교내와 교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2학년 몇 명의 형, 누나들은 학교 간부여서 봉사시간을 받으면서 아침청소를 하는데 저는 1학년 혼자이기도 하고 간부도 아니여서 눈치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아침 기숙사에서 아침을 먹고 바로 학교에 등교해 청소를 했습니다. 맨 처음에는 쓰레기를 집게로 많이 집다보니 손이 아프기도 하고 요령이 없어서 힘들기도 하고 “내가 괜한 오지랖으로 아침 청소를 하는 건 아닐까? 학생들이 나를 보면서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하거나 학교에서 문제아여서 벌로 쓰레기 줍는다고 하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진 않을까?” 등의 남의 시선이 신경 쓰였습니다. 그 다음날에 청소를 하고 있는데 한 어르신이 지나가면서 “착한 학생이네, 몇 학년이야?”한 말씀을 듣고 ‘내가 헛된 일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2학년 때는 선생님께서 봉사차장으로 추천해주셔서 봉사차장이란 직책도 맡고 환경지킴이를 맡아 환경지킴이장이 되어 1, 2학년 동아리 멤버들과 매월 일주일에 세 번씩 환경캠페인을 하고 연말에는 운동장에 쓰레기를 주워도 줄어드는 것 같지 않아 운동장캠페인을 해 중학생들에게도 캠페인을 했습니다. 2학년이 되었을 때는 저와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어 저와 같이 매일 아침청소를 같이 했습니다. 저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쓰레기를 안 버리는걸 보면서 작은 변화 하나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몸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세상은 안 변해도 내가 먼저 변하면 주변도 변한다는 걸 지난 3년 동안 집게와 파란 쓰레기통을 들고 다니면서 배웠습니다.

 위의 경험을 통해서 저는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옳은 일을 할 때는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이 조금씩 변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재미있게도 제가 졸업하던 해에 남동생이 모교에 입학해 매일 같이 제가 하던 쓰레기 줍기를 해주었고, 지금은 정선고의 문화로 자리매김 했다고 합니다.

 - 강원도 정선에서 해남으로 농부가 되기 위해 왔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먼 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사실 서울에서 태어난 서울남자입니다. 5살 때 정선으로 가서 고등학생 때까지 학창시절을 보내긴 했지만요. 해남이 아빠의 고향이고, 친할아버지가 살고 계십니다. 어릴 때부터 명절 때마다 7시간이 넘는 거리를 왔다 갔다 하며 할아버지 집에서 하는 농사일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연로하신 77세 할아버지가 농사를 그만 지으실 생각을 안하셔서 제가 직접 거들어 드려서 할아버지가 편히 쉬실 수 있게 하고 할아버지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어 해남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농촌이 건강해야 도시도 건강하다”

 - 농업전문대학하면 조금 생소한데, 본인의 대학생활에 대해 이야기 해 줄 수 있나요?

 △ 저는 사실 대학생들은 많이 한다고 하던 연애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농대를 진학 했습니다. 하지만 개강 첫날 엄마 연배인 동기들과 남학생들로 가득 찬 교실을 보고 로망은 고이 접어 두어야했습니다~.ㅎㅎㅎ

 제가 다닌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는 캠퍼스가 30만 평입니다. 그 안에 소 100두, 돼지 2000수, 닭 3만 수가 있고 과수원 2000평이 있습니다. 하루는 돈사에서 하는 수업을 들으려고 했는데 학교버스가 없다고 해서 운동 삼아 돈사까지 가는데, 옆을 보니 고라니도 뛰고 있어 경주를 하며 돈사까지 뛰어 가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다양하게 도전하는 걸 좋아해서, 화훼장식 자격증반, 토피어리 자격증반, 중장비 동아리, 1만6000수를 사육하는 육계 동아리, 맛돈 동아리, 산란계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처음 6개 동아리 활동을 할 때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습니다. 홍길동도 아니고 이것저것 다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 박재훈은 어떤 학생들보다도 열정이 넘치고, 다 소화 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드리고 나서 염려들이 칭찬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제과제빵 수업도 있어 빵을 만들고 나서 맛있게 먹기도 했습니다. 다른 학교는 축제 때마다 연예인이 오고 하지만, 우리학교는 한우 고기, 계란, 치즈를 판매하고 굴삭기 운전 체험과 말타기 체험이 있습니다.

 친구들은 재미있는 도시 문화를 즐길 때 저는 밀짚모자를 쓰고 장갑과 장화를 장착하고 축사에서 작업하고 경운기, 트랙터를 운전 했지만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대학을 다니면서 배운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돈 주고도 사기 힘든 경험을 몸소 했습니다. 또한 토피어리 소형, 중형 디자이너 자격증, 굴삭기 자격증, 로더 자격증, 지게차 자격증을 취득 했습니다.

 - 왜 농촌, 농부인가요?

 △ 저는 도시에도 청년이 있다면 시골에도 청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농촌이 건강해야, 도시도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에 가서 돌아다니다보면 사람에 치이고 공기 때문에 답답함까지 느끼게 되는데, 농촌에서 지내면서 자연을 벗 삼아 매 순간 살아있음 느끼고 싶었습니다.

 농촌에서 작물을 가꾸는 삶은 정말 매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농촌 일은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지만, 자연속에서 일을 하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아! 농촌은 문화생활을 많이 못한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올해만 음악회, 뮤지컬, 농악놀이, 발레 등 4번이나 무료 공연 관람을 했습니다. 농촌의 문화생활도 생각보다 많아 정말 재미집니다.



 ▲“이발, 토피어리… 배워서 봉사할 겁니다”

 - 다른 꿈은 없었는지, 농부로 살아가면서 또 하고 싶은 일들이 있는지?

 △ 사회복지사라는 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사회복지과를 전공하지 않아도, 봉사는 많이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농부로 살아가면서 이장이 되어 살고 싶은, 살아 숨쉬는 마을을 만들고 싶습니다. 문화생활이 힘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색소폰과 기타 연주를 들려드릴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직접 이발을 해 주시기도 하고, 엄마가 주변 할머니들을 머리를 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저도 조만간 이발을 배워 이발로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주변에서 자라나는 새싹 같은 아이들에게 토피어리 봉사도 하고, 농부라는 직업은 힘든 일만 있는 것이 아닌 재미있는 일도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진로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나요?

 △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른들과도 이야기 해보면 아직도 진로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또한 꿈은 직업이 아니라, 살고 싶은 삶이에요. 경험을 아직 많이 못해본 고등학생, 대학생 때 반드시 직업을 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변 환경을 탓하며 포기 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움직여 정보를 알아보고 도전하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기회가 될 때마다 더 많이 보고 많이 들으며, 많이 경험하고 부지런히 배우며 남들 눈을 의식하거나 스스로 한계 짓지 말고 세상을 향해 손을 높이 뻗었으면 좋겠어요!

 - 박재훈이 생각하는 행복한 세상이란? 어떤 여자 친구를 만나고 싶은가요?

 △ 자신이 원하던 꿈을 찾고, 그 길을 걷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성공한 삶이고, 선행이 단지 기사감으로만 끝나는 세상이 아닌, 선행자체가 당연시되는 세상이 행복한 세상인거 같아요. 그리고, 좀 쑥스럽지만 제가 만나고 싶은 여자친구는요, 예의바르고, 말을 예쁘게 하고, 미래를 같이 그려나가며 성장 할 수 있는 여자사람이에요~~~



▶박재훈 청년농부를 만나는 방법

이메일 : 5625067@nave.com

페이스북 : facebook.com/jaehun.park.794



서일권_옹달샘 <광주청년센터the숲 센터장>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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