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소송지원회 다카하시 마코토 대표
‘첫 인연’ 이경자 할머니 승소에
100째 한국 방문서 감격 2배

▲ 나고야 소송지원회 다카하시 마코토 공동대표가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중공업에 끌려간 조선 소녀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서 고 최정례 씨를 가리키고 있다.
 “광주는 저에게 마음의 고향입니다. 제가 죽게되면 제 몸의 절반은 광주에 묻고 싶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를 처음으로 알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원해 온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나고야 소송지원회)’의 다카하시 마코토 공동대표는 이미 결심을 내린 상태였다.

 지난 9일 그가 머물고 있는 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그는 “어제(8일) 큰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제가 죽으면 화장해서 뼈의 반(유분)은 광주 무등산에 뿌리고 싶습니다. 일본에 돌아가면 가족들에게 말하고, 자녀들과 손녀에게도 말할 겁니다.”

 고등학교 세계사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86년 근로정신대 문제를 알게된 뒤 피해자들의 한을 풀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온 그다.

 소송 지원과 더불어 일본에선 금요일마다 미쓰비시의 사죄를 촉구하는 운동을 벌여왔다.

 도쿄 `금요행동’이다. 2007년 7월20일부터 나고야 소송지원회는 매주 금요일 360㎞가 떨어진 도쿄를 찾아 도쿄 시나가와 역,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미쓰비시의 자발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선전행동을 펼치고 있다.

 벌써 10년째, 지난 4일까지 진행된 금요행동이 382회에 달한다.
 
▲“광주 마음의 고향, 가족들에 말할 것”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이상갑 공동대표는 “위르겐 힌츠페터가 5·18을 세계에 알렸다면, 다카하시 마코토는 근로정신대 문제를 세계에 알린 분”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생을 마감한 뒤에도 광주와 함께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다카하시 대표는 역사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일본 교사들의 인솔자로 한국을 찾은 상황이었다.

 계획대로라면 교사들과 함께 일본에 돌아갔어야 했지만 지난 8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3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해자들이 승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광주를 찾았다.

 광주로 달려온 그는 가장 먼저 3차 소송 원고인 이경자 할머니를 만나 함께 이 할머니의 시할머니 산소를 찾아 기쁜 소식을 전했다.

 “무조건 광주에 오고 싶다고 하고 광주로 왔습니다. 이경자 할머니를 처음 만난 일본인으로서 승소를 축하하고 싶었습니다.”

 이 할머니와 다카하시 대표는 사실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1988년 미쓰비시에 강제동원됐다 지진으로 사망한 피해자들의 유족을 찾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았을 때 만난 유족이 바로 이 할머니였다.

 “1986년 미쓰비시 측으로부터 1944년 발생한 지진 희생자 명부에 조선인의 이름과 연고지 주소가 적힌 것을 발견하고, 유족을 찾으러 1988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제주도, 완도, 목포, 나주, 광주 등을 돌아다녔어요. 그때 고 최정례 씨 유족으로 이 할머니를 처음 만났죠. 만나기 전에 나주군청에 갔는데 농민운동가라고 이 할머니 집을 알려줬었죠.”

 이때 일본 나고야의 방송사들도 동행 취재를 나왔는데, 유족들은 `위안부’라는 오해를 살까봐 굉장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1986년 피해자 유족으로 첫 만남
 
 이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만나주지 않으려 했는데, 우리는 언론도 아니고 지진희생자들을 위한 추도비를 세우는데 피해자의 이름을 새기고 싶어 찾아왔다고 설명을 드렸죠. 그때서야 이경자 씨가 집에 들여보내줬어요. 집에 들어가니까 냉장고에서 식혜를 꺼내 주셨는데 그 순간이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지금도 그때가 그립습니다.”

 이 만남을 계기로 이 할머니 부부와 고 최정례 씨의 언니인 최순례 씨가 1988년 12월4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추도비 제막식에 참석하게 됐다.

 그 뒤로도 다카하시 대표는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원하기 위해 수도 없이 한국과 일본을 오갔다.

 이번 방문이 100번째 한국 방문. 이 100째 방문에서 한국을 처음 찾았을 때 만났던 이 할머니와 승소의 기쁨을 나누게 된 것이다.

 다카하시 대표를 만나자 이 할머니는 꼭 안아줬고, 두 사람은 말 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30여 년의 기나긴 투쟁을 통해 `승리’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3차 소송 결과는 일본 나고야의 신문에도 보도됐다고.

 “(1차 소송)고등법원에서 이기고, 어제(8일 3차 소송) 이기고, 11일 2차 소송도 당연히 이길 것입니다. 그러면 대법원 판결이 정말 빨라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미쓰비시는 그동안 문제 해결을 요구하면 요구만 받아주고 `재판 중인 건에 대해서는 우리 입장을 말할 수 없다’고 회피해 왔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더 이상 `재판 중’이라는 핑계는 대지 못할 것입니다. 빨리 대법원 판결이 나온다면 문제 해결을 위한 미쓰비시와의 제2의 협상을 이어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문재인 정부 역사 바로잡아주길”

 어느덧 90을 바라보는 고령이 된 피해자들. 다카하시 대표는 오로지 할머니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기만을 바랐다.

 “해결의 길이 가까워졌습니다. 할머니들이 정말 오래 건강하셔서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을 맞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정부에 대한 기대도 컸다. “문재인 대통령은 2000년 5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원고 측 변호사였습니다. 문 대통령이 그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잘 해줬으면 합니다. 이번 재판을 통해 한일 정부가 합의를 해서 역사를 바로 잡고, 이것이 동북아시아 평화협의로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연못에 작은 돌을 던지면 파장이 일듯, 저희의 활동이 한일 동북아 평화를 위한 `작은 돌’이 되길 바랍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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