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광주서 시민군 진압 동원” 의혹
구성원들 “‘5·18 진압군’ 기념비라니”
교장은 “신군부의 진압명령 거부” 항변

▲ 지난 달 광주 상무고 운동장 한 켠에 설치된 ‘육군 기계화학교’ 창설 기념비.
 최근 광주 상무고에 5·18 당시 시민군 진압에 동원됐다는 의혹을 받는 군부대의 창설 기념비가 세워져 논란이다.

 기념비 공사가 완료되고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일부 구성원들이 반발하고 있는데, 학교 측은 “문제될 줄 몰랐다”며 뒤늦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10일 광주 상무고에 따르면, 운동장 한 켠에 1m 높이의 ‘육군기계화학교 창설기념비’가 지난달 20일 설치됐다. 상무고 자리가 기계화학교의 전신인 ‘기갑학교의 터’라는 내용과 함께 ‘선배 전우들의 업적을 기린다’는 문구가 새겨졌다.

 1953년 상무대 경내인 현 상무고 자리에서 창설된 육군기갑학교는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신군부가 시민군 진압을 위해 동원된 군부대 중 하나다. 당시 육군 참모차장 황영시는 기갑학교장 이구호 등에게 무장헬기와 전차를 동원한 진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상무고 내에 이같은 역사를 가진 군부대 기념 조형물이 설치되면서 교사와 학생들의 반발이 구체화했다. 학교측이 구성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설치를 주도한 것도 반발을 키운 원인이 됐다.
 
▲“구성원과 논의없이 교장 단독 결정”
 
 학교장은 기념비 공사가 끝난 후인 9월25일, 26일 두 차례의 교직원회의 자리에서 동의를 구했을 뿐 이전엔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는 게 구성원들의 주장이다.

 다음 날인 27일엔 기념비 앞에서 육군기계화학교 부대장 등 간부들과 군악대가 참여하는 기념식도 열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일부 교사와 학생들이 이때부터 기갑학교 관련 정보를 찾아가며 문제 제기에 나섰다.

 상무고 교사 A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5·18 당시 기갑학교가 진압에 참여했다는 글을 봤다”며 “잔인한 살육을 자행했던 이들이 제대로 된 사과는 했는지, 아직 진실 규명도 제대로 되지 않은 마당에 기념비를 세운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분노했다.

 이어 “교직원, 학생들의 의견수렴 없이 ‘군부대 역사 찾기’ 일환으로 추진된 이 일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면서 “교장·행정실장의 사과가 있었지만 기념비 제막식을 한다고 군인들이 교내에 들어와 있는 모습을 보니 화를 참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상무고에는 지난 3월 학생 주도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잊지 않기 위한 ‘작은 소녀상’을 학내에 설립하는 등 역사 의식을 중시하는 곳이어서 학생들의 충격은 더 컸다.

 교사 A씨는 “운동장 한 켠에 떡하니 자리 잡은 기념비를 볼 때마다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앞선다”며 “몇몇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질문 세례를 쏟아내며 안타까워했고, 학생 동아리 중심으로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교장은 “교사들을 상대로 기념비에 대한 자문을 구한 적 있고, 학생들의 기계화학교 방문 시 반응도 좋았기 때문에 기념비 설립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5·18연구소 “항쟁 진압 투입도 사실”
 
 교장에 따르면, 상무고는 올해 3월부터 진로교육의 일환으로 육군기계화학교와 교류를 이어왔고 1학기 말 기계화학교 측이 기념비 설립을 의뢰했다.

 기갑학교 5·18 진압 작전 참여 논란과 관련, 학교장은 최근 개정판으로 출간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인용하며 “이구호 기갑학교장은 광주의 타격을 우려해 신군부의 전차 진압 명령을 거부했다”면서 “진압 참여 여부는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문제가 된다면 전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여론수렴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김희송 교수는 “5·18 당시 기갑학교장의 명령 거부는 사실이지만, 기갑학교의 병력 지원도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김 교수는 “기갑학교의 전차 진압 여부 등은 5·18진상규명 특검 과정에서도 논쟁이 있었을 만큼 첨예했던 사안”이라면서도 “기갑학교가 5·18에 무력을 지원하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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