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 특히 식자층에서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말을 할 적에 ‘물리적인 시간이 없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서구 이론서에 자주 나오는 ‘물리적인 시간’이란 말은 본래 ‘상대적인 시간’이 아니란 의미에서, 즉 ‘뉴턴적인 시간(절대적인 시간)’을 말할 때 주로 쓰인다.

 ‘물리적인 시간’은 ‘시간 (그) 자체’를 말하고, 이 시간은 나와 관계 속에 있는 시간이 아니라 나하고는 ‘절대적으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시간 그 자체’(of itself and from its own nature flows equably without regard to anything external)를 뜻한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쓰는 ‘물리적인 시간이 없다’는 말은 나와 관계 속에 있는 시간(아인슈타인의 상대적인 시간관에 가까운 시간)이고, ‘내가’ 일이 너무 많아 도무지 시간이 안 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시간관에 따르면 ‘물리적인 시간이 없다’는 말은 바른 말이 아니고, 상대적인 시간관을 가진 사람이 뉴턴역학적인 말을 쓰는 꼴이다.

 절대적인 시간관은 희랍에서 시작되어 뉴턴에서 완성(뉴턴역학)되고 고전물리학의 기초가 된다. 뉴턴에게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며, 서로 독립적인 차원이다. 시간과 공간은 ‘어떤 물체(또는 주체)’가 세계에 자리를 잡을 때 기준이 되는 ‘좌표’ 같은 것이다. 물론 뉴턴역학은 1905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관계성)이론에 따라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시간과 공간 이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사실 뉴턴적인 시·공간에 맞는 우리말은 애당초 없다. 우리 한국인에게 시·공간은 언제나 주체(나)와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물리적인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하는 까닭은 ‘전도(뒤바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의 글에 나오는 ‘물리적인 시간’이란 말은 상대적(관계적)인 시간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쓰는 말이다. 그들은 아인슈타인 이전의 희랍적·뉴턴역학적·고전물리학적 ‘시·공간’ 개념과 엄격히, 또 의식적으로 구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맥락을 모르고 우리의 ‘관계적’ 시간관으로 읽고 만다. 그래서 한국인의 시간관과 맞지 않는 ‘물리적인 시간’ 같은 이상한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김찬곤<광주대학교 초빙교수>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